‘1000억 대출 사기’ 디지텍시스템스는 어떤 회사

입력 2016-03-23 10:43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한때 ‘스마트폰 터치스크린’ 생산 1위… 기업사냥꾼 인수 후 2년도 못돼 부도

디지텍시스템스가 기업사냥꾼의 놀이터가 되면서 휴대폰 터치스크린 업계 1위 기업이 망가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디지텍시스템스는 스마트폰용 터치스크린패널을 생산하는 삼성전자 1차 협력사였다. 국내 휴대폰 터치스크린 시장에서 점유율 1위였고 꾸준히 1300억원 이상 매출액과 100억원을 훌쩍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코스닥시장에서도 한 주당 1만원 이상에 거래됐다.

그러나 2012년 기업사냥꾼에게 회사가 인수된 후 2년이 채 못 돼 회사는 부도를 맞았다. 당시 회사를 인수한 최모(53)씨와 디지텍시스템스 전 부사장 남모(42)씨는 인수예정인 디지텍시스템스 주식을 담보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인수 자금을 마련했다. 부족한 돈은 디지텍시스템스 회삿돈을 먼저 빼내 충당하기도 했다.

2012년 2월 기업 인수 후에는 회삿돈 170억원을 횡령해 사채를 갚았다. 이후에도 협력업체로부터 인력을 공급받는 것처럼 거래를 가장하거나 페이퍼컴퍼니에 차입금 형태로 수십 차례에 걸쳐 회사 돈을 빼돌렸다.

특히 최씨는 회사 돈으로 또 다른 삼성전자 휴대폰 1차 협력사였던 엔피텍을 차명인수해 회사의 최대주주로 삼았다. 엔피텍을 통해 은행에서 수십억원을 대출받고 엔피텍의 채무를 디지텍시스템스가 보증하도록 했다. 빌린 돈은 자신의 개인 금융권 채무를 갚는 데 이용했다.

금융권 대출을 위해 매출채권을 위조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중국 법인으로 매출채권을 위조해 씨티은행에서 180억원을 대출받았고 당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국책은행도 회사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1000억원 규모의 대출과 지급보증을 실행했다.

결국 검찰에 꼬리가 밟힌 이들 일당은 지난해 말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검찰 조사에 따르면 최씨와 남씨가 디지텍시스템스와 엔피텍에서 횡령한 금액이 약 1000억원에 달했다.

범죄자는 잡혔지만 디지텍시스템스는 결국 극심한 자금난과 대출금 연체로 2014년 법정관리를 받았고 2015년 1월 상장폐지됐다. 엔피텍 역시 2013년 말 부도를 내고 공장 가동을 멈췄다.

지난해 말에는 디지텍시스템스와 관련해 펀드매니저가 개입한 대규모 주가조작이 행해졌다는 사실도 적발됐다. 기업사냥꾼 일당으로 추정되는 시세조종 세력의 뒷돈을 받고 자산운용사와 투자자문사 펀드매니저 등 9명이 디지텍시스템스 주식을 일부러 매수한 것이다. 이에 단기간에 회사 주가가 두 배 가까이 올랐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사냥꾼이 금융권 부실 대출과 주가조작 등 각종 수법을 동원해 건실한 기업을 단기간에 망가뜨린 것”이라며 “아직도 범죄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국책은행과 시장을 속이고 활개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