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이겨라 이세돌!

입력 2016-02-2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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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이세돌 9단의 목소리는 꼭 여자 같다. 성조(聲調)는 높고 결은 가늘다. 언젠가 TV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그 특이한 목소리를 재미있어 하자 “바둑으로 안 되면 목소리로 세계를 제압하겠습니다”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그러나 목소리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다. 그의 기력은 불세출의 기사라 해도 될 정도다. 이름부터 독특하다. 이세돌의 ‘乭’(돌) 자는 한국에서 만든 한자다. 중국에서는 그 글자가 없어 ‘李世石’으로 표기한다. 이미 33세가 되어 전성기가 좀 지난 듯싶지만 ‘불패소년’ ‘쎈돌’로 불려온 그의 사금파리 같은 예리함과 타개력은 일품이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 9단에게 다섯 판 대국을 하자고 도전한 것도 이런 기력과 흥행성을 감안한 결과일 것이다.

3월 9일 시작되는 대국은 보나마나 이 9단이 이길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5대 0으로 승부를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직까지는 알파고의 기력이 프로 최고수에 필적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9단 역시 큰소리를 치고 있다. 원래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 이런 식으로 당돌하고 도발적인 말을 곧잘 하던 사람이니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알파고가 완승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됐다. 바둑의 ‘덤’에 대한 통계적 분석으로 유명한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 MBA 주임교수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9단이 1승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2승을 거둔다면 기계에 대해 인간이 승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50대 50으로 승부를 예측하면서 대국 내용에서도 이 9단에게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잠자고 쉴 때에도 알파고는 학습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 달 전과 지금이 다를 만큼 기력 향상 속도가 빠르다. 딥 러닝 기술을 통해 사람이면 1000년 걸리는 100만 번의 대국을 4주 만에 소화했다고 한다.

알파고의 기보를 분석한 프로기사들은 침착하고 균형감각이 좋다고 기풍을 평가했다. 알파고의 가장 큰 장점은 수읽기와 계산 능력이다. 특히 수 싸움이 많은 중반전과 정교한 끝내기가 필요한 후반전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뛰어난 계산 능력을 바탕으로 일단 유리한 바둑에서는 절대 무리하지 않고 끝까지 승세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체스와 달리 바둑에는 컴퓨터가 알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 있다는 걸 믿고 싶다. 컴퓨터가 바둑은 조화라는 것, 선비의 예도라는 걸 알 수 있을까? 그런 막연한 것은 몰라도 그만이라 쳐도 기세나 세력, 두터움과 같은 부분은 계산력이나 추리로 알아내거나 학습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컴퓨터가 알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 있는 것이다.

초반 포석도 아직은 서투른 게 아닐까. 이 9단도 “초반 포석은 계산이 아닌 감각으로 두는 경우가 많은데 알파고가 포석 감각까지 갖추려면 엄청난 데이터가 쌓여야 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거나 저렇거나 이 9단이 이겼으면 좋겠다. 설사 내년, 내후년쯤이면 진다 해도 일단 이번엔 지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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