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CEO
왜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는가 하는 질문에 60% 이상의 사람들이 자녀교육 혹은 자녀의 결혼자금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식 뒷바라지에 전념하느라 노후 준비를 못했다고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투자를 직업으로 하는 나의 상식으로는 자녀들에게 과도하게 투자하는 것이 가장 잘못된 일이라고 확신한다. 자식들이 자라서 부모의 노후를 준비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높은 교육열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방법에 문제가 많다. 아이들이 밤늦게 학원에서 공부하느라 학교 교육을 등한시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식의 교육을 받아서는 창의적인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없다.
부모는 노후를 위해 필요한 돈까지 자녀들의 교육에 쏟아붓지만 정작 좋은 교육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부모들은 노후 준비가 안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서 하고 있다.
나는 많은 부모님들을 만나 자녀들의 사교육비를 아껴서 주식을 사라고 제안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뜬금없는 말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농담처럼 여기는 분들도 있었다. 한국의 실정을 모르는 한가한 생각이라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의식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국 노인층의 빈곤율은 계속해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참고로 한 달에 사교육비로 나가는 150만원을 우리가 운용하는 펀드에 들어 있는 한 회사에 20년간 투자했다면 지금 약 80억원 정도로 불어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주식이 위험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주식만큼 노후 준비에 좋은 것이 없다.
한국의 노령 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개인들도 노후 준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퇴직연금 등의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들 각자의 자각과 노력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람들 대부분의 금융지식과 투자 이해도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일해야 한다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식투자를 대부분 투기로 이해한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많은 젊은 사람들은 본인의 퇴직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도 직원들의 퇴직연금이 다양성 없이 원리금 보장형에만 투자되어 있는 실정이다. 은행과 같은 한국의 금융기관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보다는 원금을 지키는 펀드를 고집한다. 은행예금은 결코 안전한 자산이 아니다. 노후 대비를 위해서는 오히려 위험한 자산임을 알아야 한다.
후회 없는 노후 준비를 위해서는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본인의 퇴직연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퇴직연금은 오랜 기간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주식에 투자되어야 한다. 과다하게 지출되는 자녀들의 사교육비를 줄이고 그 자금으로 자식들에게 주식을 사주어야 한다. 그러면 자녀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 취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크다. 꾸준히 사 놓은 주식이 장기간에 걸쳐 큰 자산으로 불어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 시작해야 한다.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보다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