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우리술 이야기] 쌀 공급과잉과 술산업

입력 2016-02-1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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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한국은 최근 쌀 공급 과잉으로 농민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쌀 관련 농업정책이 바뀌면서 혼란스럽다. 정부는 쌀의 과잉 재고를 축소하기 위해 오래된 쌀을 사료용으로 사용하고, 논의 면적을 줄여 나가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쌀을 사료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재고관리 비용을 감안할 때 이해할 수는 있으나 국민 정서에 잘 맞지는 않는다. 더구나 논을 창고나 공장 용지 등으로 바꾸어 없애는 것은 문제가 많다. 논의 특성상 한 번 용도가 바뀌면 다시 논으로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 식량 부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기 어렵다. 한국은 곡물 자급률이 23% 수준으로 산악 국가인 스위스나 사막 근처의 이스라엘보다도 낮다.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인 1930년대 쌀 공급 과잉을 심하게 겪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쌀 부족 국가이고 1930년대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시기인데 조금 이상하다. 1970년 도쿄대 사가구치 긴이치로 교수가 쓴 ‘그대는 아는가, 명주 아와모리를’이라는 논문을 보면 일본은 당시 쌀 공급 과잉이 매우 심각해 쌀을 숯으로 만들 것인가, 도쿄만 앞바다에 버려 물고기가 먹게 할 것인가 등을 고려했다고 한다.

1930년대 일본의 쌀 공급 과잉은 조선과 대만으로부터 쌀 반입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때 쌀을 숯으로 만들거나 도쿄만 앞바다에 버릴 것을 검토했다면 일본이 쌀을 조선과 대만으로부터 정상적인 가격으로 사온 것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수탈한 것이 확실하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은 쌀이 부족해 만주에서 들여온 콩깻묵 등으로 연명한 사람이 많았다.

이때 일본은 쌀의 공급 과잉을 술 산업 발전을 통해 해결해 나갔다. 술 산업은 쌀 등 농산물을 많이 소비할 수 있고, 수출과 보관 등에서도 유리하다. 일본의 국주인 사케는 고급일수록 쌀을 많이 깎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쌀 소비량이 많다. 쌀로 만든 소주의 경우 증류주이기 때문에 도수가 높고 부피가 작아 운송 보관 등이 용이하다. 술은 장기 숙성할수록 일반적으로 가격이 오른다. 오키나와의 쌀소주인 아와모리는 100~200년 된 것도 있고, 이렇게 오래 묵은 아와모리를 갖고 있어야 명문가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쌀, 과일 등을 직접 수입할 때는 농민들의 반대가 심하지만 술을 수입하면 저항이 별로 없다. 일본 사케의 수입은 부가가치가 높아진 일본 쌀을 수입하는 것이고, 프랑스 와인 수입은 프랑스 포도를 아주 많은 돈을 내고 사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술 산업은 쌀 등 우리 농산물 소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들이 많이 마시는 소주와 맥주는 거의 다 수입 농산물로 만든다. 최근 유행하는 수제맥주도 맥아, 호프 등 원료가 모두 수입산이다. 쌀막걸리도 대부분 수입 쌀을 쓰고 있다. 수입 쌀 재고 처리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 농업에는 도움이 전혀 안 된다.

한국의 술 역사는 일본보다 오래되었고 술 문화도 깊고 다양했다. 잘 디자인된 정책만 있다면 한국 술 산업이 일본보다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딱 맞는 시기라는 말이 있다. 일본보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술 산업을 제대로 발전시켜 보자. 쌀 소비가 크게 늘고 낙후된 농촌경제도 좋아지며 괜찮은 일자리도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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