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선교사와 조선말기 조선사회
파리 외방전교회, ‘조선 천주교 그 기원과 발전’(살림)은 1924년 홍콩에서 발간된 책으로 천주교의 초기 선교사를 기록하고 있다. 파리 외방전교회는 1658년 아시아 지역에서의 포교를 위해 프랑스에 설립된 해외 전도단체로 1831년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 주교를 조선 대목구에 파견하면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이 책은 한국의 초기 포교사뿐만 아니라 당시 외국인 신부들에게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보여졌는가를 담고 있다. 특히 조선말기와 구한말을 전후한 한국 사회를 엿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조선이 천주교와 만나는 최초의 시기는 임진왜란 때이다. 일본군 가운데 천주교인이 상당수 있었고 일본에 있던 예수회 소속 신부가 포교를 목적으로 병사들과 함께 조선 땅을 밟았다. 포로가 된 조선인 가운데 여럿이 복음을 듣고 입교했다. 17세기 초 일본에서 있었던 천주교 박해 사건에는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아홉 명도 205인의 순교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
조선의 천주교가 특별한 점은 외부의 직접적 복음 전파 없이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중국에 파견된 사신들을 통해 일부 선각자들이 예수회 선교사들을 만나고 이들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확산된다. 이 시점이 1777년으로, 이덕조, 권철신, 정약전, 정약용 등이 초기 대표적 인물이다. 베이징 주교가 마카오의 사제 도스 레메디오스를 조선 국경으로 파견한 것은 1791년이다. 1794년에는 천주교도 수가 4000명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1801년에 그 숫자는 만 명이나 된다. 1882년 열강들과 통상조약이 맺어질 때까지 정말 많은 신부와 성도들이 죽음을 당한다. 역사책에서 배웠던 것보다 훨씬 많은 피가 뿌려졌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서양 선교사들이 목숨을 걸고 건넜던 곳이 압록강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도강을 감행하는 북한 동포들을 떠올렸다.
조선말기의 형편과 관련한 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무분별한 벌채로 산에 남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도처에 귀신이 산다고 여기고 길일과 흉일을 믿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주술사, 점쟁이, 무당을 찾는 조선인의 풍습도 전하고 있다. 조선말기의 특성에 대해 붕당 출현, 붕당 간의 처절한 당쟁, 끊이지 않는 궁정의 음모를 밝히고, 18세기 말 이후로는 천주교에 대한 무자비한 박해를 들고 있다. 박해받는 외국인 선교사들을 구하기 위한 프랑스 군대의 강화도 침입에 대한 걱정도 털어놓는다. “조선인들이 선교사들을 외세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정찰꾼 정도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
초기 천주교 선교사와 조선말기 우리의 모습을 선교사들의 시각을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귀한 기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