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보단 가볍잖아"
12시 20분, 14시 20분, 16시 20분, 18시 20분. 하루 네 번 서울 을지로4가역은 분주해진다. 지하철 2호선의 문이 열리면 두툼한 패딩을 입은 어르신들이 어깨에 쇼핑백을 메고 한 곳으로 모인다. 바로 ‘백화점 택배 노인’들이다.
어르신들의 활기찬 목소리와 발걸음에 한파는 자취를 감춘다. 서울과 경기까지 백화점에서 백화점으로, 고객이 요청한 물량을 지하철을 이용해 발로 전달한다.
이 일을 한 지 6년째인 박씨 할아버지(73)는 일하는 보람을 이렇게 말한다. “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 안 하고 세월을 보내니 더 빨리 늙어.” 할아버지는 은퇴 후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관련 일을 해보았지만 자신을 사장으로 본 고객으로 인해 입장이 난처해지는 등 여러 이유로 그 일을 계속하기가 힘들었단다. 백화점 택배 일은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회사에서 고정적으로 월급이 들어오니, 괜찮은 조건이라며 미소를 보낸다.
하지만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이곳도 경쟁이 치열해.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데 돈이 된다고 소문이 나니 업체가 늘어 일이 많이 줄었어….”
통계청이 조사한 연령별 취업분포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65~79세 노인 취업자는 201만2000명. 이 중 36.0%에 달하는 72만6000명의 노인이 단순노무에 종사한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정부에서는 노인 일자리 창출을 외치지만 현실은 노인들의 편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기본은 건강이라고 강조한다. “나처럼 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용돈이나 벌기 위해 나오지만, 힘든 사람들이 더 많아. 요즘 100세 시대라고 노래도 나오던데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해. 건강해야 돈도 벌고 즐겁게 살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