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은 지난 2003년 체코 프라하 IOC 총회에서 열린 '2010년 동계 올림픽' 후보지 최종 결선 투표에서 선전에도 불구하고 3표차 탈락이라는 아쉬움을 맛본 바 있어, 4년을 와신상담해 온 평창으로선 막판 유치활동에서 이 회장의 활약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2003년만해도 무명에 불과했던 평창이 최종 결선 투표까지 올랐던 것도 이 회장이 막판 총회장에서까지 IOC위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게 총회에 참석했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평창이 아쉽게 고배를 마신 후에도 이 회장은 2014년을 위해 꾸준히 스포츠외교 활동을 펼쳐 왔다. 특히 이 회장은 지난 2005년 싱가포르 IOC총회 때에는 운동을 하다 다리를 다쳐 걷기 힘들었던 상황에서도 휠체어를 타고서까지 IOC 총회장에 나타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에 나서는 '휠체어 부상투혼'을 발휘했다.
이 회장은 올해 들어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 1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평창 유치지원 회합'에 참석한 데 이어, 2월 IOC 실사단의 평창 방문 당시 엄동설한에도 불구, 실사단 영접에도 직접 나서 실사단과 함께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받고, 오찬을 함께 함으로써 실사단의 좋은 평가를 이끌어 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었다.
이 회장은 실사단 방문에 앞서 동계올림픽 유치시 스노보드와 프리스타일 종목이 열리게 될 보광 피닉스파크에서 직접 스키를 타고 인프라와 관련시설 등을 점검하며 유치를 위한 현지 분위기를 북돋운 바 있다.
지난달에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삼성의 올림픽 후원 조인식에도 참석해 평창 유치를 도왔다.
특히, 베이징 행사에는 자크로게 IOC 위원장을 비롯 2014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에 투표권을 행사하게 될 102명의
전세계 IOC 위원 중 3분의 1에 달하는 33명을 포함해 세계 스포츠계 인사 100명이 대거 몰려 이 회장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우리 나라는 금년 3월 세계 3대 스포츠 제전 중 하나라는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대구에 유치한데 이어 지난달에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인천에 유치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러나 올림픽 유치활동은 상황이 확연히 다르다. 엄격한 IOC 룰을 적용받는 올림픽의 경우 유치위원회 차원에서 투표권을 가진 IOC위원을 초청하거나 방문하는 것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치를 원하는 자국 IOC위원의 역할이 막중하다. 세계 스포츠계에 영향력이 있는 이건희 회장의 행보가
주목 받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면, 2014년 동계올림픽을
평창에 유치할 경우 국민소득 3만달러 선진국 진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유치활동을 이끌고 있다.
또 이 회장은 "올림픽 유치는 국가적 대사로서 국민 전체의 단합이 성공의 열쇠"라며 범국민적 힘의 결집을 역설했었다.
한편 이 회장은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결정짓는 7월 4일 과테말라 IOC 총회 투표가 불과 50일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향후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행보를 더욱 가속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