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거목들] 거래소 원로들이 추억하는 김용갑 전 이사장

입력 2016-01-12 10:22수정 2016-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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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감시 강화 등 제도개혁 드라이브…명동 작전꾼 색출할땐 어깨가 으쓱

한국거래소가 증권거래소였던 1970~1980년대 재직했던 원로 직원들은 공통적으로 당시의 거래소근무를 아련하게 추억하곤 한다. 거래소의 시장감시기능이 커지고 상장사의 의무가 강화되면서 거래소 직원들의 사기가 한창 충만했던 때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원로 직원들은 제도개선을 통해 거래소의 지위를 강화했던 김용갑 전 이사장을 긍정적으로 추억하는 분위기다.

재무부 차관 출신으로 정부와 교감이 활발했던 김 전 이사장은 시장감시제도와 공시제도를 대폭 강화했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이전까지 증시의 규율체계는 증권업협회(현 금융투자협회)차원의 자율규제 중심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시장규모가 커지면서 각종 불공정거래가 발생하자 자율규제만으로는 더 이상 증권시장을 적절하게 규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1970년대 초 발생한 종금주 파동 등은 외부규제의 필요성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김 전 이사장은 정부와 함께 증권거래법의 금지조항을 개선해 시장심리업무를 개시했다. 1973년부터는 감리2과를 신설해 주가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수집?분석했다. 김 전 이사장은 풍문을 수집한 심리요원을 매매가 이뤄지는 단상에 투입해 불공정 매매주문을 색출토록 했다.

한 거래소 임원 출신 인사는 “거래소 직원이 헛소문을 퍼뜨리고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버젓이 명동을 활보하는 모습을 그저 보기만 하는 입장에서, 그 사람들을 잡아내는 입장이 된 것”이라며 “심리담당 직원뿐 아니라 거래소 전체 직원의 어깨가 으쓱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시제도의 강화도 거래소의 시장영향력에 힘을 보탰다. 1960년대 상장사의 공시의무는 1년마다 사업보고서를 책자로 배포하는 정기공시 의무가 전부였다. 투자자들로서는 빈약한 보고서에 담겨 있지 않은 주요정보를 취득할 방법이 없었다. 수시공시 규정이 있긴 했지만 공시 내용이 매우 빈약했고, 그나마 객장 내 방송공시도 1969년에야 실시돼 정보접근이 제한돼 있었다.

김 전 이사장은 증시 상장규정에 근거를 마련해 수시공시를 제도화하기 시작했다. △수표?어음의 부도 △영업활동 정지 △회사정리절차 개시 △사업목적 변경 △재해로 인한 손해 △소송발생 등 지금 시각에서는 당연히 전달돼야 할 정보로 여겨지는 내용을 시작으로 공시대상 기업의 범위를 차츰 넓혀나갔다. 상장사에 대한 조회공시 제도가 도입된 것도 이때부터다.

아울러 상장법인의 불성실공시에 대한 규제도 차근차근 정비됐다. 먼저 정기공시의무 위반 법인에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고 이후 수시공시 신고의무를 위반에도 벌금을 부과토록 했다. 상장사가 증권거래법이나 하위법령을 위반한 경우 증권관리위원회가 임원의 해임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한 ‘서슬퍼런’ 규정도 김 전 이사장의 손길이 닿은 것으로 전해진다.

거래소 한 임원은 “김 전 이사장이 제도를 마련하는 과정이 기존의 증권업계 사람들에게는 일부 나쁘게 보였을 수 있다”면서 “요즘 시각으로는 ‘거래소가 갑질을 한다’고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시장을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엄격한 규율이 필요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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