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FTA와 같이 다른 나라와의 무역 관세를 낮추는 정책은 나라 전체로는 이익이 되지만 나라 안을 들여다보면 항상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자유무역이 참가국들 모두의 부를 증가시켜 준다는 경제이론은 국가 경제를 하나의 개체로 파악하고 이익과 손해를 금전적인 크기로만 비교할 때 얻어지는 결론이다.
자유로운 교역이 그에 참여하는 경제 주체들에게 모두 이익이 된다는 명제는 그 대상인 경제 주체가 한 사람일 때는 문제가 없다. 내가 덜 좋아하는 물건을 주고 더 좋아하는 물건과 교환한다면 나는 더 행복해지는데, 모든 사람들이 이렇듯 자기가 더 선호하는 교환만을 받아들일 것이므로 교역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은 후생의 증가를 얻는다.
그런데 이 명제가 국가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 있을 때는 교역이 발생한 후 반드시 부의 재배분을 거쳐야만 성립한다. 만일 FTA가 시행되어 해외의 농산품이 싸게 수입된다면 농업 분야는 확실하게 손해를 보게 된다. 반면 상대국이 관세를 부과하지 않아 수출이 용이해진 공산품들의 경우 확실하게 이익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이익과 손해가 개인의 경우에는 내부적으로 상쇄가 되지만 국가의 경우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익을 누리고 다른 분야 사람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 자유무역이 국익에 좋다는 주장은 이익과 손해를 금전적으로 비교하면 이익이 더 크다는 이야기이고, 경제이론에서도 부의 재분배가 필요하다는 것은 명확히 인식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이 있는 가상적 나라에서 FTA가 도입되어 한 사람은 10만원이라는 추가 이윤을 얻고 나머지 두 사람은 3만원씩의 손해를 본다면 국가 전체로는 4만원의 추가 이윤이 생기고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추가 이윤을 올리는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된 두 사람의 손해를 보전해 주지 않는다면 FTA가 과연 이 나라의 후생을 제고해 주는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부의 재배분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부의 재배분을 위한 상생기금이 준조세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상생기금이 자발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FTA로부터 손해를 보게 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그것을 택한 것이냐고 묻고 싶다.
이 경우 부의 재배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식을 취하든 결국은 이익을 본 사람들로부터 조세를 거두어 손해를 본 사람들에게 지원해 주는 과정을 통하는 수밖에 없다. 이 방법이 다시 관세를 매기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 경우 부담해야 하는 조세의 크기가 원래의 관세보다는 줄어들고 특히 수혜를 받는 분야의 수출이 늘어나므로 결과적으로 수혜를 본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FTA와 같은 환경 변화의 경우에는 비교적 쉽게 그 수혜자와 피해자를 구분해 낼 수 있다. 이미 FTA 협상이 진행되는 기간부터 생산된 많은 연구들이 수혜 부문과 피해 부문에 대한 추정을 한 바 있다. 그러한 연구가 없더라도 FTA 발효 이후에 관찰되는 교역량의 변화만으로 수혜 부문과 피해 부문에 대한 추정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올해의 자동차 수출과 내년의 자동차 수출의 변화만을 비교하더라도 자동차 생산기업이 FTA로부터 얻게 되는 수익은 쉽게 계산된다. 부의 재분배 과정에서도 자발적인 기여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당연히 수혜자의 이익과 피해자의 손해에 비례한 재분배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부의 재분배 관행이 확립된다면 미래에 비슷한 대외 협상 시에도 보다 큰 국민의 지원이 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