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시대 변화와 지도자의 정치철학

입력 2015-12-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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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거목(巨木)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면(永眠)하였다. 그의 마지막 길에는 첫눈과 매서운 바람이 동행했다. 국회의사당 앞 영결식장의 많은 빈자리가 쓸쓸함을 더했다. YS가 마지막 남긴 유지는 통합과 화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결식이 끝나기 무섭게 정치권은 다시 ‘우리’와 ‘너희’로 나뉘어 대립과 갈등을 확대하고 있다.

나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나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은 없다. 하지만 YS 영정 앞의 여야 정치인들을 보면서, 그래도 우리 세대가 ‘양김’과 함께 유신독재와 신군부의 권위주의 시대를 건너왔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40대 중반 이하의 젊은 세대는 과거 국민이 야당 전당대회의 총재 선출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신독재 치하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구했던 나 같은 기성세대에게 1979년 5월 양김이 이끌던 신민당의 전당대회 총재 선출대회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양김의 공과(功過)는 있다. 하지만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나, YS의 영정 앞에서는 ‘정치적 아들’ 운운하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민노총이 없었으면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라며 남 탓만 하는 새누리당의 지도부와는 여러모로 비견된다. 무엇보다 양김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투철했다. DJ와 YS는 필생의 경쟁 관계였지만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항상 협력하였다. 국민은 그런 양김을 믿고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양김이란 정치지도자와 함께한 것을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야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정치인들이 양김과 달리 국민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그들에게 시대의 변화에 맞는 정치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유신독재와 신군부의 권위주의 정권은 국민의 옷과 하물며 머리 길이까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했다. 대통령은 체육관에서 뽑았다. 국민 주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당시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였다.

양김은 비록 방법의 차이는 있었지만 일관되게 ‘자유’와 ‘민주주의’ 앞에서는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국민에게 필요한 시대의 과제를 명확히 이해하였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국민은 믿고 따랐고, 존경하고 의지했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여야 간에 정권이 교체될 정도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되는 듯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정치는 조정과 합의의 원리가 작동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경제는 인구가 5000만을 넘으면서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거나 근접한 나라가 되고, 기업은 상장사 사내 유보금이 855조 원이 넘을 정도로 부자가 되었다.

반면 서민 가계는 1200조 원의 빚에 허덕이고, 중소기업은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하고 있다. 소득 없는 성장, 일자리 없는 성장, 분배 없는 성장으로 서민 대중의 삶은 불안하고 힘들다.

사회가 변하면 정치인의 정치철학도 변해야 한다. 지금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고통받는 서민 대중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치철학이다. 그러나 야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여전히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전면에 내세웠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자는 국민의 기대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래서 야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오르지 않는 것이다.

양김의 정신은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 두 분이 목표로 했던 가치는 ‘국민 행복’이었다. 양김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정치인이라면 국민의 행복을 향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정치철학을 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가 변하면 그에 따라 정치철학도 변해야 한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인은 국민의 행복을 구현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철학을 구비한 정치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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