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독도, 닻을 내리다

입력 2015-11-26 13:17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섬은 일월풍진에 깎여 온 흔적이 역력하다. 두 개의 암청색 바위가 푸른 하늘과 맞닿아있다. 먼 바다를 응시하는 풍모가 초병의 눈빛처럼 의연하다. 끼룩끼룩! 괭이갈매기들이 옥타브를 높이며 머리 위를 선회한다. 섬기린초 괭이밥 날개하늘나리......,여리고도 강인한 생명들이 가파른 바위에 매달려 반가운 손짓을 한다. 모두가 친숙한 모국어들이다. 만리 밖 초동을 만난 것처럼 풀 한 포기 돌 하나에도 애틋한 시선이 머문다. 아! 여기서는 갈매기도 아리랑 곡조로 울고 파도도 휘모리장단으로 철썩이는구나. 나는 독도가 백두대간의 핏줄임을 금세 알아챈다.

암벽에 손을 얹으니 잔잔한 파동이 느껴진다. 지구가 소용돌이치던 어느 신생의 아침에 백두대간의 지층을 뚫고 불쑥 솟아올랐으리라. 창망한 바다 에 홀로 서서 말간 햇덩이 억 만 번은 길어 올렸으리라. 청동새 날아오르던 백악의 노을 바라보며 눈빛 짓무르도록 고국의 산맥을 연모해왔을 게다. 모태로부터 멀리 떨어진 홀로 섬이기에 독도는 그처럼 외롭고 파란만장한 생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낳은 정 기른 정도 없는 섬나라 못된 사람들이 친자(親子)_를 주장할 때마다 너는 또 얼마나 놀란 가슴을 쓸었으랴. 역사서나 지질학적 DNA를 찾아 한번쯤은 네 족보에 대한 내력을 어찌 알아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독도가 땅땅, 억장가슴을 치며 기어이 나에게 일갈 한다.

‘나는 사백만년 전 반도의 등뼈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 옛날 장군 이사부가 내 등뼈에 신라의 금령을 양각한 이후 나는 일구월심 반도의 혈족으로 살아왔다. 닭 바위 가재바위 숫돌바위 물오리바위......, 일찍이 이 나라 백의민족이 나에게 붙여 준 정겨운 이름들이다. 나의 출생과 성장을 지켜 본 나라가 나의 조국일진데, 어찌 너희가 나의 호적을 함부로 입에 올리느냐. 대대손손 남을 노략질 해 온 못된 근성을 너희는 아직도 버리지 못하였느냐. 나는 반도 지천에서 흔하게 불리는 투박한 돌림자로 지어진 돌쇠, 돌섬, '독도(獨島)'이지만 너희들에겐 삼킬수록 쓰디쓴 '독도(毒島)'가 될 뿐이다. 아이가 엄마를 단번에 알아보듯이 내 한순간이라도 태모의 젖줄을 잊었겠느냐. 탯줄로 이어진 모자지간의 정이기에 백두대간의 잔기침 소리에도 나는 자주 놀라거늘, 내 발밑에 이는 저 잔잔한 파동이 밤마다 천길 지층 산혈(産血)을 더듬어 반도로 가는 나의 발자국 소리임을 너희는 정녕 모르느냐.’

독도가 가뭇이 멀어진다. 나는 뱃전에 기대어 가만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아스라한 수평선 끝에 삐죽이 솟아오른 두 개의 원추형기둥이 거함의 관제탑처럼 우람하다. 갑판 위로는 흰 새들이 쉴 새 없이 이륙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독도는 최대항심 2000미터를 자랑하는 거대한 군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선 밑에는 지름10키로 미터가 넘는 해산(海山) 삼형제가 있다.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천혜의 적재함이다. 선실 바닥에는 수 억 톤이 넘는 하이드레이트 신생연료까지 내장하고 있다.

저 군함은 사백만년 전 동해를 지키라는 백두대간의 밀명을 받고 모기지 한반도를 떠나 동쪽으로 출항했으리라. 거함을 바다 한가운데에 정박시키고 일찌감치 부동(不動)의 닻을 내렸을 게다. 한반도를 배후에 두고 좌우180도로 방어 각을 고정시켰을 게다. 항속제로! 천길 암반층에 정박한 탓에 애초부터 퇴각은 없다.

하 세월 동력을 끊고 물 떼의 흐름에 순응했으리라. 순한 눈망울로 반도의 별자리를 읽었으리라. 태풍에 불시착한 새들을 무릎 위에 앉히고 밤새 비바람을 다독이기도 했을 게다. 삐삐, 심해에서 들려오는 돌고래들의 극초단파로 수중음향을 탐지하거나 등에 붙은 고동이나 보라성게들의 해조음으로 적진을 탐지하기도 했을 게다. 묵호나 주문진 쪽에서 날아 온 갈매기들의 모르스 음을 해독하며 '동해 이상 없음'을 뭍으로 가는 파도에 실어보내기도 했을 게다. 말미잘 끄덕새우 뱀고동 파랑돔 해초들의 소형전단을 거느린 천혜의 보물섬, 독도를 나는 대한민국 동쪽 땅 끝에 닻을 내린 한 척의 초록군함이라고 명명해본다.

독도는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해 있다. 백두대간이 반도의 등뼈라면 백령도와 독도는 반도의 양쪽 날개에 해당된다. 지형으로 보면 백령 독도는 모함인 백두대간을 학익진으로 호위하며 대륙으로 비상하는 형상이다. 영토의 극점인 한쪽 날개를 잃는다면 한반도가 어찌 당찬 비상을 약속할 수 있겠는가. 독도가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게다. 철새들에게 독도가 구원의 섬인 것처럼 우리에게도 독도는 영토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구원의 뿌리인 것이다. 한반도의 호위함이자 세세손손 뿌리내려야 할 한민족의 정신적인 닻이다.

현대는 바다의 전쟁시대다. 바다 밑에 미래의 삶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여 독도를 지키고 가꾸는 것이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독도에 대한 연구의 지층을 더욱 두껍게 해야 한다. 막연한 애국심에만 기대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 생태, 자원 등으로 큰 갈래를 세우고 차분히 학술적 논거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명쾌한 논리를 가지고 한발 한발 국제사회로 독도의 지평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앞서가는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앞서가는 분들, 독도사랑에 헌신하는 많은 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풍월도를 번뜩이며 동해를 호령하던 이사부의 기개와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서계(書啓)를 받아오던 안용복의 당찬 근성을 오늘은 나의 가슴에도 깊이 새긴다. 나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사부이고 안용복이 될 때 독도는 만대를 누릴 반도의 땅이 되지 않겠는가.

멀리 독도가 초록해치를 열고 갈매기편대들을 힘차게 이륙시킨다. 군함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눈부시게 희다.

김만년 코레일 서울본부 기관사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