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 통합 등 ICSD추진…법·규제 완화 필요
12년만에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세계중앙예탁결제기관회의(CSD9)가 개최됐다. 한국, 일본, 대만의 공동 주최로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서울에서 개최된 이번 회의에서 아시아 채권시장 통합 등 아시아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논의가 부각됐다.
◆아시아 국제 예탁결제기관 필요성 ‘부각’
조엘 메레르 유럽 중앙예탁결제기관협의회(ECSDA) 회장은 "아시아 자본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채권은 물론 국제예탁결제기관이 필요하다"며 "법적, 제도적 규제 완화와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 중국 등 막대한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주로 미국이나 유럽시장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또 현재 아시아 지역에는 국제예탁결제기관(ICSD)이 없어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이나 미국을 대상으로 채권을 발행하더라도 유럽의 유로클리어를 통해야 한다. 실제로 삼성생명, 예탁결제원 등도 해외시장 채권발행, 매입을 위해 유로클리어에 회원으로 등록한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제간 거래가 크게 늘어나자 ADB(아시아개발은행)를 중심으로 아시아 채권시장 통합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지역 내에 안전하고 효율적인 국제예탁결제기관을 세워 해외로 빠져나가는 외환 수요를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조엘 메레르 회장은 "아시아 중앙예탁결제기관(ICSD) 설립을 위해서는 채권시장 통합이 선결돼야 한다"며 "현재 아시아시장에서 추진중인 채권시장 통합 구상은 매우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힘든 과정이겠지만 아시아 지역 내 통합기관이 세워질 경우 외국인을 비롯한 투자메리트가 매우 높아질 것이라는 견해다.
이미 유럽지역은 1968년 설립된 유로클리어를 통해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 다양한 국가의 예탁결제기관과 금융기관들이 국제 거래 및 결제를 이용하고 있다.
◆“규제는 풀고 경쟁력 높여야”
한국증권연구원 노희진 연구위원(박사)는 "FTA 타결도 결국 경제적으로 큰 블록을 형성해가는 과정이며, 채권시장 통합 추진이 아시아의 블록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다만 아직까지 필요성만 인식했을 뿐 설립까지는 각국의 이해관계, 규제완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덧붙였다.
아시아시장에서 중앙예탁결제기관을 만들 경우 각 나라의 시장 규모와 자금력이 주요 변수로 이를 고려하면 현재 일본이 가장 유리하다. 그러나 그는 국가간 협상만을 통해 아시아의 대표적 국제 예탁결제기관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노 연구위원은 "유럽의 유로클리어를 볼 때 국가간 협의에 의해 강제로 결정된 게 아닌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통해 현재의 위치에 이른 것"이라며 "한국의 예탁결제원도 이를 대비해서 시스템을 갖추고 제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예탁결제원이 고효율 저비용의 안전하고, 빠른 시스템과 서비스를 갖출 경우 이용자(투자자, 금융기관 등)들은 그런 예탁결제기관을 선택한다는 설명이다.
정의동 예탁결제원 사장은 "유로클리어 탄생까지는 5~6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아시아의 경우 유럽의 사례를 간접경험한 만큼 시간을 좀 더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성이 '먼저'...M&A도 대비해야
노희진 연구위원은 한국 증권예탁결제원의 제도적 수준에 후한 점수를 줬지만 다양한 부가가치 상품개발 등 수익성 추구에 대해서는 신중한 견해를 제시했다. 이번 CSD9에서도 주요 세션 주제로 장외시장 파생상품거래, 이산화탄소 배출권 등 신규 업무영역이 다뤄졌다.
노희진 연구위원은 "국내 예탁결제부문이 상당히 발전돼 있지만 공공성이 강조되는 인프라 기관으로서의 무엇보다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며 "독점적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상품개발 등으로 수익성을 지나치게 쫓다 보면 금융소비자들의 편익이 감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미국, 유럽에서 예탁결제기관, 증권거래기관 등 공공성 위주의 인프라기관도 M&A가 잇따르고 있어 해외 기관들과 경쟁하는 동시에 협력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노 연구위원은 “FTA로 금융시장이 개방되는데다 세계 10위권의 국내 경제규모를 고려할 때 예탁결제원 뿐 아니라 거래소 등도 해외 기관들에게는 매력적일 수 있다”며 “국내 기관들이 잘못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면 해외기관에게 인프라 자체를 먹힐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경우 국내 자생적인 자본시장 발전은 요원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