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구 트레이스 대표
젊은 공학박사 둘이서 창업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싸움
어느 날 문득 나에게 물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닌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사업을 꿈꾼 적 없이 그나마 잘하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했던 시절은 시간이 더해갈수록 단순히 학년이 올라가고 학위가 높아지는 에스컬레이터와 같은 성장의 시간이었다. 그 과정에 고민도 괴로움도 질투도 많았지만 진행방향과 성장의 고도에서는 아무런 문제없이 모두가 원하는 목표점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새파란 젊은 공학박사 둘이서 트레이스를 창업한 이래 하루하루의 생존과 다음 날 회사를 유지하기 위한 처절함의 시간 속에서 넘어지지 않고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내가 지금 이 고생을 하고 헌신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조차 할 여유도 없이 시행착오와 생존의 스트레스 속에서 눈앞에 닥친 숙제 해결에만 빠져 살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 비전도 정량화된 계획도 없이 2000년대 벤처거품이 빠진 후에도 용감하게 직장경험도 없이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난 뒤 수백·수천만원의 회사운영비와 직원들의 급여 지급에 두 눈이 시뻘겋게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고 창업 때 꿈꿨던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는 요원하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산업의 흐름과 세상이 원하는 것은 점점 변해가고 어느 날은 우리 회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에 대해서도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당장 벤처기업으로서 생존을 위한 투자와 매출을 만드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됐다.
초창기에는 은행대출도, 거래선과의 외상매입금도 없이 몸집이 가벼운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단 한 번도 ‘지금이라도 회사를 접으면 어떨까’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생각조차 해보질 못했다. 회사와 나의 이 같은 정체성 혼돈에 대해서 시간이 지난 이후 많은 사람들의 질문이나 나 자신의 회상 속에서도 ‘왜 그런 생각이나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나 자신도 신기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곧바로 알게 됐고 나 자신도 피식 웃을 수밖에는 없었다. 세무 기장부터 문서 제작과 화장실 청소 매뉴얼까지 직접 내 손으로 만들었던 이 회사가 어느 순간부터는 가족이나 나 자신보다 앞선 존재가 됐고 나는 회사와 나를 하나로 여기는 창업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것이다.
내가 사업을 하는 이유를, 내가 이 기업을 운영하는 이유와 그 목적을 잊어버린 채, 오로지 목표만이 눈앞을 가리게 된 것이다. 목표가 목적을 가리게 되니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나 자신은 가족에 앞서 회사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하며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지독한 창업자 매너리즘은 창업 초기의 비상장 시절에는 단기적 기업 성장의 효과는 발현할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회사 자산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경영자의 ‘Burn-Out’을 불러온다. 이는 회사가 경영자의 희생과 헌신의 대가로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기회가치를 잃게 만든다. 이런 점을 내가 절실히 새기게 된 데는 무려 10여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였다. 여유가 생겨서 혹은 목표를 이뤘기에 이러한 깨달음을 가지게 된 것은 절대 아니다.
더 잘 경영하고 싶고 더 좋은 사업을 펼치고 싶은 욕망은 그 어떤 자극보다 경영자로 하여금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벤치마킹을 하면서 기획과 미래의 시뮬레이션을 하게 하는 절대적 동력원이 된다. 이들 동력원이 결국 찾아낸 것은 외부가 아닌 내부 스스로의 정체성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5년 전쯤에야 비로소 나 자신에게 ‘왜 기업을 하는가?’에 대해 처음으로 목표가 아닌, 잊어버렸던 목적에 대해 되물어보고 ‘왜’라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분석하고 설득하게 됐다. 하지만, 나 자신의 눈높이에서 아직도 이에 대해 내가 설득이 되는 답을 찾지도, 알지도 못하고 있다. 매출 얼마라는 식의 정량적 목표 설정과 비상장사의 기업공개라는 정성적 목표만이 삶을 메우면서 나 자신의 욕망과 사회 속 영웅주의적 발상 속에서 여전히 혼돈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른 시간 내에 부자가 되겠다’는 목적은 천박한 것이고 ‘우리나라 국가경제에 전적으로 공헌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것은 고상하고 지향하여야 할 목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의 극과 극인 목적의식 자체가 ‘기업을 왜 하는가’에 대한 돌파구가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에는 너무나 모호하고 인내를 불태울 동력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나 쉽게 망각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겠다? 국가경제 공헌?
두 가지 모두 날 움직이는 동력
창조경제, 창업 열기 반가운 일
포기 않고 정진하는 모습 바라
내가 이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중에, 창조경제와 청년 창업이 장려되고 최근의 모바일 비즈니스 투자와 같은 제2의 1999년 투자 붐도 맞게 되었다. 2년 전 모교인 카이스트에서 10여 년 먼저 사업을 한 선배로서 조그마한 창업포럼을 만들게 됐다. 15년 전처럼 천편일률적인 환경으로 장밋빛 일변도의 성공한 모습으로만 젊은 청년들을 현혹시키진 않을까 뒤늦게 염려하는 선배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활동을 한 것이다.
성공의 단맛보다는 더 많은 중도 포기자에 의한 실패의 쓴맛과 이로 이어지는 거의 불가능한 재기의 현실을 보여주고 인식시킴으로써, 막무가내 식의 ‘한번 해볼까’라는 식의 창업을 방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창업은 좋은 사업 아이템으로 대박이 날 가능성의 확률이 매주 최소 1명 이상이라도 배출하는 로또 1등보다 현격히 낮다.
투자를 성공의 모습으로 착각한다면 많은 모습을 보겠지만, 투자는 절대 성공의 모습이 아니다. 오로지 성공의 길을 가는 한 과정일 뿐이므로 절대로 성공과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정말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며 아이템이 아닌 기업의 성장을 위해 준비가 된 자들만이 예비창업자의 길을 걷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결과는 성공을 포함하는 생존과 성장의 모습일 것이다. 이 자체가 삶인 기업 경영자의 길에 장밋빛 극소수의 ‘엑시트’ 사례는 절대 바람직한 창업 유도 방식이 아니란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성공을 향하여 성공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언젠가 나에게 성공이라는 열매를 던져주는데, 이 자체는 목표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깨달음이다. 목표 앞에서 목적의 당위성을 각인해 나가면서 목표를 이루어 나갈 때만, 기업의 성장은 물론 그 정체성에 큰 의미가 부여될 것이라고 본다. 창업 장려 외에 젊은이들의 해외 진출 권유에 대해서도 장려하는 쪽이나 이 장려책에 현혹되는 젊은 예비창업자들이나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 머리 아프고 시간만 걸리니 당장 급한 목표를 실행하려는 창업이나 해외 진출을 통해 ‘어떻게든 투자를 받아서 모양을 만들자’는 목적 없는 목표주의가 현재의 세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근래와 같이 좋은 지원과 혜택이 부족했던 시기를 지나 뒤늦게야 ‘왜 기업을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 선배 기업인들보다 뛰어난 장려 환경 속에서 효율적인 창업과 생산적인 경영자의 길을 빠르게 걷는 젊은 예비창업자들이 훨씬 더 많이 나오는 것이 우리 사회가 바라는 진정한 투자의 결실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왜 혁신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없는가?’라는 자조에는 항상 코웃음을 쳐왔다. “목표만 강요하는 상황 속에서 목적도 없이 창업한 경영자와 그 회사가 무슨 혁신을 창출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가?”라는 확고한 현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업을 왜 운영하는가?’ 또는 ‘왜 창업을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는 목적을 100% 설정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남은 일생 동안 100% 스스로 수긍할 수 있는 목적을 설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을 나의 목표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운영 중인 트레이스가 더욱 성장하고 혁신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업무와 활동을 남들보다 더 많이 하고 성공의 목표가 달성되기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서 쉬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면, 성공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든 뛰어가든 혹은 돌아가든 지름길로 가든 결국 그 지점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포기하는 순간은 성공으로 가는 길 중간에 주저앉아 실패가 되는 것이며, 그렇게 포기라는 것을 하는 과오를 내 평생 절대 범하지 않겠다는 것이 내 삶의 목표이다. 그리고 오늘의 기고문 주제 ‘나는 왜 기업을 하는가?’에 대해서 오늘 현 상태에서의 우답을 내어본다. “기업을 통해 이 기업에 관계된 모든 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모습을 나보다 더 간절히 바라고 나보다 더 많이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는 지금의 사명감! 내일과 모레, 그리고 그 다음 날 난 계속하여 목적에 대해서 더 알아가고 구체화하는 데 힘쓰면서, 선량한 목적 하에 획기적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포기를 모르는 트레이스의 경영자이자 창업자로서 그 역할을 다할 것이다.
◇이광구 대표 프로필
- 1991년 경남과학고 수료
- 1995년 한국과학기술원 학사
- 1997년 한국과학기술원 석사
- 2002년 한국과학기술원 박사
- 2004년 트레이스 대표이사
◇트레이스 연혁
- 2000.09 ㈜트레이스 설립
- 2004.09 텔레매틱스 단말기 ‘엔트렉 세이프티’ 출시
- 2005.04 장영실상 수상
- 2005.05 휴대폰용 제논 프레쉬 광모듈 출시
- 2005.12 부품소재기술혁신상(장관 표창)
- 2007.03 국내 최초 풀터치스크린 제조 공급
- 2009.06 LED 프레쉬 광모듈 출시
- 2011.12 장영실상 수상
- 2012.08 MOT 우수기업상 수상(장관 표창)
- 2013.06 ATC 우수제조기술기업 선정
- 2013.10 전자 IT의 날 산업포장 서훈
- 2013.12 50회 수출의 날 2천만불 수출탑
- 2014.06 월드클래스300 기업선정
- 2015.09 센서형 디지타이저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