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정책금융 上] 일관성 없는 정책금융 집행, 관리감독도 허술

입력 2015-09-14 10:28수정 2015-09-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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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입맛 맞춘 ‘엉터리 대출’ 논란에 비리 연루 의혹 검찰 수사까지

한국의 정책금융 시스템이 구멍났다.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해 왔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허술한 부실기업 관리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양 기관은 최근 3년간 진행된 부실기업 처리 과정에서 부실한 금융지원과 관리 감독으로 부실만 더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산업은행은 STX그룹과 동부그룹 등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관리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이 2조원대 부실을 숨겨온 사실이 밝혀져 도덕성 문제까지 대두되고 있다.

수출입은행도 지난해 모뉴엘 사태에 이어 올해 경남기업과 성동조선 구조조정 과정에서 내부통제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정책금융의 부실한 운영시스템 이면에는 관치금융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책금융기관이 정부의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움직이면서 시장 논리보다 정치 논리에 따라 의사 결정이 이뤄져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홍기택·이덕훈’의 목소리는 없다 =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정부가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목적으로 특별법을 통해 만든 대표적 정책금융 기관이다. 조선산업과 건설업 등 기간산업과 함께 금융산업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진행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존재감을 상실했다.

현재 기업 구조조정은 부실기업 지원에 발을 빼는 시중은행들 탓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과거에는 금융감독원이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경남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치권 로비에 의한 특혜 논란이 드러나자 부실기업 정리에 한발 물러나 있다. 대신 산업은행의 역할이 더 커졌다.

은행 빚이 많은 41개 주채무계열기업 중 산업은행은 14개 기업의 주채권은행을 맡고 있다. 은행 중 가장 많다. 주채무계열의 총채무액은 321조원이다. 이 가운데 약 45조원을 산업은행이 책임지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국내 조선사 선수금환급보증(RG)의 절반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금융 기관의 부실한 관리감독으로 기업 구조조정 컨트롤타워에 공백이 생기면서 다른 채권은행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동부그룹 구조조정 사례에서 보듯 매끄럽지 못한 기업구조조정 과정은 온갖 잡음을 일으켰다. 당초 성사 가능성도 낮은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묶어 포스코에 매각하려는 패키지딜을 시도했다. 포스코가 인수를 거절하자 결국 일부 알짜 계열사의 매각 골든타임을 놓쳐 그룹 전체의 자금난을 악화시켰다.

문제는 논란이 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법을 제시해야 할 수장들이 자리 보전과 책임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홍기택 회장은 수조원의 부실을 낸 대우조선 사태를 놓고도 관리·감독자 입장에서 어떠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덕훈 행장 역시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지만 각종 국내외 대기업, 정부기관 등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는 소식만 전할 뿐 구조조정 시장에서 그의 목소리는 전혀 없다.

◇정책금융, 정권과 대리인의 공생 = 홍기택 회장은 취임 초기 “나 낙하산 맞다. 결과로 보여주겠다”며 호언장담했다. 임기 만료인 내년 4월까지 불과 7개월 남은 상황에서 그가 내뱉은 말이 어떠한 평가를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취임 초기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한다’며 스스로 낙하산 인사임을 자임해 논란을 빚었던 이덕훈 행장의 리더십도 재평가 대상으로 오르고 있다.

이들 수장들은 이달 14~15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 이어 21일과 10월 1일 예정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국감에서 곤욕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책금융기관 낙하산 인사에 따른 부실 은폐 의혹은 태풍의 핵이 될 전망이다. 정책금융 기관이란 점 때문에 지속적으로 권력과 유착된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일관성 없는 정책 집행과 허술한 관리감독이 부실기업의 부실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다.

정책금융기관과 정권 실세와의 유착도 포스코 비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산업은행은 2010년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인수할 때 매각주관사였다. 포스코 비리 사건은 산업은행과 포스코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던 권력 실세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에서는 오래 전부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며 “금융업 경험이 없거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금융기관 수장으로 오면서 갖가지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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