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도핑의 덫’] 스타 선수냐, 아니냐… 도핑 징계에 권력 있다!?

입력 2015-09-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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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덫에 걸렸다. 올무에 걸린 짐승이 괴로운 듯 울부짖었다. 그러나 빠져 나가려고 몸부림을 칠수록 올무는 더욱 잔인하게 짐승을 옥죄어왔다. 몇 시간이 지났다. “식식! 헉헉!” 이젠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겹다. 결국 짐승은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싸늘히 식어갔다.

짐승은 먹이를 찾아 산길을 헤매던 지리산 반달곰이다. 밀렵사냥꾼이 불법으로 설치한 올무는 보호동물인 지리산 반달곰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리산 반달곰은 밀렵꾼의 덫에 걸려 하나둘 죽어가고 있다. 마치 ‘도핑(doping)’의 덫에 걸린 선수들처럼.

도핑이란 운동경기 중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심장흥분제나 근육증강제 같은 약물을 복용하거나 의학적 처치를 하는 일이다. 그러나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덴마크의 사이클 선수 커트 젠센이 흥분제 암페타민을 과다 복용해 경기 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196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의무분과위원회가 설치됐고, 이듬해인 1968년 그레노블 동계올림픽에서 도핑 테스트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도핑 테스트란 스포츠에서 선수의 금지약물 복용 여부를 검사하는 행위로 선수 보호가 첫 번째 목적이다. 검사는 상위 입상자 또는 임의로 선정한 선수의 소변을 채취해서 실시한다. 금지된 약물은 안페타민, 에페드린, 코카인 등이다.

IOC는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운동선수들의 금지약물 사용을 관리, 감시, 제재하기 위해 산하 기관인 세계반도핑기구를 지난 1999년 11월 스위스 로잔에 설립했다. 이 기관은 금지약물 리스트를 포함한 반도핑 규약을 제정, 동·하계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도핑 테스트를 실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만약 테스트에서 금지약물 복용이 확인되면 종목에 관계없이 2년간 출전 금지 처분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대한체육회 태릉선수촌 내에서 관리하던 선수들의 도핑검사를 2007년부터 독립법인인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가 출범해 활동하고 있다. KADA는 전국체육대회 등 국내 종합 스포츠대회 및 종목별 대회 출전선수, 또는 국제대회 파견 대표선수 등에 대한 도핑 테스트를 주관한다. 국내에는 유일한 도핑 검사기관이다.

문제는 선수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도핑 테스트가 오히려 선량한 선수들의 선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핑에 따른 징계 수위 결정에 있어 고의성 유무를 분별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도핑의 덫에 걸린 선수는 무차별적인 비난과 가혹한 징계를 피할 수 없다.

KADA는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도핑 방지와 관련된 각종 교육 및 홍보를 진행, 도핑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있다. 하지만 금지하고 있는 약물이 약 500가지나 되는 데다 매년 새로운 금지약물이 추가되고 있어 의사들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무줄 징계’도 문제다. 선수와 종목에 따라 징계 수위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팬층이 두터운 프로스포츠 선수는 비인기 종목의 소외된 선수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징계를 받고 있는 게 국내 체육계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웅지의 정세형 변호사는 “도핑에 대한 전문성 결여가 가장 큰 문제”라며 “최소한 국내 체육계에는 도핑에도 권력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란을 막기 위해 KADA는 오는 11월부터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도핑 검사를 도맡을 예정이다. 지금까지 각 프로 연맹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하던 도핑테스트가 통합 관리되는 셈이다. 2012년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이 발의한 ‘프로선수 도핑 의무화 법안(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지난 4월 통과된 결과다.

그러나 모든 스포츠 단체에 도핑 규정을 강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 변호사는 “각 스포츠 단체의 적지않은 반발이 우려된다”며 “스포츠는 특수한 요소가 많은 만큼 과거 스포츠중재위원회와 같이 스포츠 법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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