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이후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 통화 20~50% 하락…통화 가치 1% 하락할 때마다 수입은 0.5% 감소
신흥국 통화 가치 약세에 글로벌 무역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7개 신흥국 통화 가치와 무역의 상관 관계를 조사한 결과, 통화 약세에 따른 수출 증가 혜택은 없는 반면 수입은 감소했다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어떤 형태의 환율전쟁이 일어나면 특정 국가가 승리한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글로벌 무역이 줄어들고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등 피해가 생각보다 크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FT는 설명했다.
지난해 6월 이후 러시아와 콜롬비아 브라질 터키 멕시코 칠레 통화는 미국 달러화 대비 20~50% 하락했다. 말레이시아 링깃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중국 위안화는 8월에 달러화 대비 4.5% 하락해 신흥국 전반의 통화 가치 하락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
FT 조사에 따르면 신흥국 통화 가치 하락이 수출 확대로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반면 통화 가치가 달러에 대해 1% 하락할 때마다 수입은 약 0.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최근 1년간 달러화 대비 37% 하락했다. 경제조사단체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최근 3개월간 브라질 수입 규모가 전년보다 13% 줄어들었다고 추산했다.
러시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베네수엘라도 자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는 가운데 수출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조사 결과는 최근 일부 국가가 수출을 확대하고자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자문은 “우리는 통화 평가절하와 그로 인한 변동성 확대에 ‘근린 궁핍화 정책(beggar thy neighbour)’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갈 위험에 처해있다”고 경고했다. ‘근린 궁핍화 정책’은 자국 통화 가치 하락 등 부당한 수단으로 다른 나라를 빈곤하게 만드는 정책을 뜻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 우려도 신흥국 통화 가치 하락세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닐 셰어링 수석 신흥시장 이코노미스트는 “통화 가치 하락과 함께 수입이 줄어드는 현상은 아시아 외환위기, 2001~2002년 아르헨티나 국가부도 사태 당시에도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반적으로 통화 가치 하락이 폭넓게 나타나고 신흥국들이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기 때문에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더 클 것이라고 FT는 내다봤다.
실제로 네덜란드 경제정책분석국이 지난주 발표한 세계 무역 규모는 지난 1분기에 전분기 대비 1.5%, 2분기는 0.5% 각각 위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