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크라우드펀딩, 스타트업의 ‘비빌 언덕’부터 돼야

입력 2015-08-1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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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자본시장부 기자

홍삼·녹용 진액 등으로 유명한 건강식품 회사가 있다. 1980년대에 설립돼 견고한 입지를 자랑하는 이 회사는 올 초 화장품 신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대박’ 예감에 가슴이 뛴 투자자가 있겠지만 아쉽게도 대표일가가 80% 지분을 쥐고 있는 비상장사다.

그러나 곧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이 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하반기에 공포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에서는 비상장 중소기업이 기존 사업과 회계를 분리해 기술개발 등을 추진한다면 업력에 관계없이 크라우드펀딩을 할 수 있다. 30년, 아니 50년 된 기업도 조건만 충족한다면 못할 이유는 없다.

이쯤에서 크라우드펀딩법의 도입 취지를 보면 앞의 사례가 다소 생뚱맞다. 법제처와 금융위에 따르면 이번 시행령 개정안의 주요 입법 취지는 크라우드펀딩을 창업·벤처 기업들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지난해 벤처펀드 투자 동향을 보면 3년 미만 초기기업에 대한 벤처 투자 비중은 30.8%인 반면 7년을 초과한 기업에 44.4% 투자자금이 몰렸다. 투자기간이 3년을 넘는 경우도 드물다.

유난히 취약한 국내 창업·벤처 기업환경을 고려한다면 크라우드펀딩의 첫 수혜는 7년이 넘게 운영돼온 중소기업보다는 스타트업들이 먼저 나눠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래된 중소기업이 정말 새 영역을 돌파할 기술을 가졌는지 확신할 수 있나? 한계기업이 자금모집을 위해 사기를 치는 경우 등은 어떻게 관리·감독할 것인가?”

한 기자의 질문에 금융위는 “사업성을 인정받는 기준 자체도 까다롭고 크라우드펀딩 진행 업체가 펀딩 성공률을 높이며 자기 네임 밸류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걸러질 것”이라고 답했다. 문제 발생시 감리방안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달 23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의 입법예고가 진행 중임을 밝힌 간담회 자리였다.

금융당국의 애매한 책임 떠넘기기에 펀딩 업체들은 더 빠르고 안전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 쪽으로 쏠리게 되지 않을까. 새로 크라우드펀딩 시장에 뛰어들 투자자들이 기존 전문 벤처투자집단을 닮아가진 않을까. 이제 막 시작하는 기업들의 ‘비빌 언덕’이 좁아질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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