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가 박근혜 정부의 하반기 국정과제인 노동개혁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민간 기업과 공공기관의 대조적인 행보가 눈에 띈다.
17일 재계와 정부에 따르면 민간 기업들은 고용절벽 현상 해소와 내년 정년 60세 의무화를 앞두고 임금피크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반면, 공공기관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자산총액 기준 상위 30대 그룹을 조사한 결과 378개 계열사 중 46.8%(177개)가 이미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나머지 계열사 대부분도 임금피크제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조사에서 기업 규모가 클수록 임금피크제 도입에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 15대 그룹사로 범위를 좁혀보면 275개 계열사 중 54.9%(151개)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생명, 제일모직 등 전 계열사가 만 55세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56세부터 매년 10%씩 임금을 줄이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내년부터 모든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올해 임금과 단체협약에서 노조와의 합의가 남아있다.
LG그룹은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이 이미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이다. 2008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LG전자의 경우 정년을 만 55세에서 58세로 연장하는 대신 53세에서 55세까지 호봉을 동결한다. 이어 56세는 연봉의 90%, 57세는 80%, 58세는 70%를 각각 지급한다. LG디스플레이는 만 53~55세까지는 임금 동결, 56세부터는 매년 10%씩 임금이 줄어든다. LG화학은 만57세를 기점으로 10%씩 임금을 삭감한다. LG그룹 일부 계열사는 하반기 중으로 내년 정년 60세 의무화를 대비해 임금피크제 방식에 대해 재점검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 일부 계열사에서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SK그룹은 내년부터 전 계열사로 확대한다. GS그룹은 GS칼텍스, GS에너지가 만 58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직전 연봉의 80%를 지급한다. 포스코는 57세는 이전 임금의 90%, 58세부터 80%를 지급하고, 현대중공업은 정년 퇴직을 1년 앞둔 59세에 임금 수준이 조정된다.
한화그룹의 경우 ㈜한화, 한화케미칼 등 주요계열사가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이며 한화생명, 한화손해보험, 한화갤러리아 등 5개 회사가 연내 도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민간 기업과 달리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은 걸음마 수준이다. 316개 공공기관 중 현재까지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한 곳은 4.7%(15개)에 불과하다. 특히 한국전력이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코레일 등 대형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이 지지부진하다.
한전은 2010년부터 자체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왔지만 정부 권고안에 미달하는 만큼 노사 간 재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LH는 이달 말까지 임금피크제 도입 목표를 세웠지만 노조가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어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 확산을 위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하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들었지만 인사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공염불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금피크제의 목표인 신규채용을 늘리기 위해선 별도의 정원(TO)이 필요한데, 인력 운용 계획을 세우는 기획재정부가 얼마나 증원해줄지 의문이라는 것.
더불어 기재부 입장에서 공공기관 개혁의 걸림돌인 조직 비대화를 막아야 하는 만큼 무작정 정원을 늘릴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정원을 확보하지 못한 부분은 공기업 협력업체의 신규채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해나가겠다고 하지만 이는 비정규직 등 질 낮은 일자리만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