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롯데가 '형제의 난'사태 등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국민연금이 다른 해외 연기금과 비교해 주주권 행사가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5대 연기금 가운데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연기금은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에 그치지 않고 주주권을 다양한 방식으로 하고 있다. 네덜란드공적연금(ABP), 노르웨이국부펀드(GPFG),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 4곳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주주소송과 입법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투자자 연대에 나서기도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들 기관은 주주총회가 열릴 때 주주 제안권을 활용, 배당 확대 등의 요구를 한다. ABP, GPFG, CPPIB 세 곳은 사외이사 추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해외 연기금은 '포커스 리스트' 제도도 활용한다. 기업의 지배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실적이 나쁜 기업의 리스트를 작성해 시장에 공개함으로써 공개적인 압박을 가하는 식이다. 특히 캘퍼스가 리스트를 공개할 때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크게 움직여 '캘퍼스 효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5대 글로벌 연기금 가운데 일본의 GPIF는 국민연금처럼 주주권 행사 대신 주총 의결권만을 행사한다. 다만 GPIF는 위탁 운용사에 의결권 행사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넘겨 주주권 행사권을 가진 국민연금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물론 현행 자본시장법 규정탓에 국민연금이 해외 연기금처럼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기 어렵긴 하다.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간주되면 보유 주식이 5%를 넘을 때 5일 이내에 보유 목적과 상황을 공시해야 하는 '5%룰' 적용을 받는 등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또 6개월 이내 단기 매매 차익을 투자 회사에 반환하는 등의 제약도 따르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런 제약을 고려해도 국민연금이 지금껏 주총 의결권 행사 등 최소한의 권리조차도 너무 소극적이라는 비난은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1∼3월 582회의 주주총회에 참석해 2506건의 안건 가운데 261건(10.4%)에서만 반대표를 던졌다. 특히 배당 관련 안건 534건 중 17건에서 반대표를 행사했지만 실제 부결된 건은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