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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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허물고 새 집을 지었지만, 대관령 아래의 옛집은 아주 오래전 할아버지가 지은 것이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지은 집으로 우리 5남매도 그 집에서 태어났다. 부르기를 ‘옛집’이라고 불러도 옛날 고가 형태의 집은 아니다. 그냥 오래된 시골 농가의 기와집인데, 그 집이 우리 형제들에게는 지금도 모든 집의 기초가 되는 셈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집에 대해 갖는 이미지와 개념이 자신이 어린 시절에 살았던 어떤 집의 느낌과 비슷할 것이다.
20년 전 아버지가 낡은 옛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었다. 그때 우리 형제들에게 새로 지을 집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나는 집 방향이나 마당이 그대로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집 주변에 가득했던 나무들도 그냥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새 집을 짓고 나니 그것이 꼭 남의 집같이 여겨지는 불편한 점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옛집의 ‘서녘마루’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지었던 옛집은 열 칸짜리 기와집이었다. 마루는 처마를 따라 ㄱ자로 집의 반을 둘러싸듯 놓여 있었다. 남향 마당 쪽의 앞마루는 그냥 마루라고 불렀고, 서쪽 마루는 툇마루라는 말 대신에 꼭 ‘서녘마루’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새로 지은 양옥은 집 밖으로 따로 마루를 둘 필요가 없었다. 옛집의 마루보다 더 넓은 거실이 실내로 들어왔다. 그러나 옛집에서 자란 우리들에게는 ‘서녘마루’가 없는 것이 생활에서보다는 마음속에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옛집에는 마당과 방안의 중간 공간으로 마루가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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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앉아 솔잎 사이로 부는 바람을 맞고, 솔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과 솔잎 사이로 밀려드는 저녁노을을 보며 자랐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지은 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지었는데도 마루가 사라지자 그 추억들도 함께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집에 대하여 나름대로 또 하나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이다음에 내가 만약 새로 집을 지으면 집 바깥에 꼭 서녘마루와 같은 공간을 만들 생각이다. 그곳은 방안도 아니고 마당도 아닌, 그 중간에 위치한 아주 특별한 사색의 공간이자 휴식의 공간이어서 도시의 베란다나 테라스와는 또 성격이 다르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솔잎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과 햇빛과 노을을 느끼며, 그런 자연이 우리에게 다시 옛시절의 추억을 말해주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휴가철이 되어도 어디 먼 곳으로 가지 못하고 수십년째 이제는 마루도 없는 고향집을 찾아가는 것도 바로 그런 옛 추억 때문이다.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어린 시절의 추억보다 더 새롭고 넓은 세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