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아의 소곤소곤] ‘우등생’ 자투리펀드의 눈물

입력 2015-07-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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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아 자본시장부 펀드팀장

세상의 모든 부모 입장에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오히려 멀쩡하고 잘 나가는 자식보다 늘 열심히 하지만 한 켠에서 소외된 자식일수록 더 마음이 가는 법이다.

펀드를 만들고 운용하는 운용사 입장에선 내놓는 펀드 하나하나마다 늘 귀한 자식에 비유된다.

펀드 첫 론칭 시 초기 성과가 부진해도 당시 시장 상황에 어울리는 조건에 딱 맞아떨어져 예상 밖으로 히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펀드 명부터 상품 출시 타이밍, 여러 시장 상황을 고려해 역작으로 내놓았는데 정작 투자자와 판매사한테 외면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부모 입장으로 다시 돌아와 생각하면, 성과가 우수한데 판매사나 투자자한테 외면 받아 설정액이 50억원 미만으로 쪼그라든 ‘자투리 펀드’는 애물단지보다는 늘 애틋한 자식이다.

실제 몇 년간 성과 면에서 우등생이었지만 한동안 자투리 신세였다가 입소문이 나 수탁고가 수천억원을 오가는 대박펀드로 금의환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올 들어 대표 히트 펀드로 꼽히는 현대인베스트먼트운용의 로우프라이스펀드도 수년 전 설정 당시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운용사들은 성과가 우수한 자투리 펀드들이 대박펀드로 환골탈태하는 주인공으로 거듭나 그동안 믿고 기다려준 투자자들에게 ‘결초보은’하는 날을 기다린다. 올 들어 연초 이후 성과가 무려 40%를 웃도는 한화히든챔피언펀드, 미래에셋녹생성장펀드도 현재 자투리 펀드 신세다.

그런데 최근 금융당국이 자투리 펀드 정리에 칼을 빼고 나섰다. 이번에 금융당국이 새로 내놓은 카드는 임의 해지를 강화하는 방안이다. 아예 펀드 약관에 운용자금이 50억원 미만일 경우 투자자 동의없이 임의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명시해 애초부터 자투리 펀드의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 골자다. 약관에 반영만 하면 1년이 되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펀드를 청산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당국은 자투리 펀드에 적극적인 운용사에겐 인센티브를 부여해 주는 당근도 내놓겠다고 독려한다.

이번 조치로 그동안 저조한 성과로 속을 끓였던 일부 자투리 펀드들의 청산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성과가 우수하지만 관리상 어려움이나 금융당국의 눈치 보기에 급급해 수년간 ‘거위의 꿈’을 기다린 우등생 자투리 펀드가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도 앞선다.

현재 우등생 자투리 펀드를 운용 중인 한 펀드매니저는 “설정액 규모가 큰 인기 펀드들 대부분은 판매사의 전략적 상품이나 계열운용사 상품을 미는 경우로 베스트펀드에 오른 사례가 많다”며 “투자자를 고려한 조치라고 하지만 오히려 자투리 펀드 정리에 앞서 우등생 자투리 펀드는 육성하는 판매 관행 등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토로했다.

소규모 펀드가 대형 펀드 대비 정상적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이번 정리안을 내놓은 금융당국의 입장엔 동감한다. 여기에 우등생 자투리 펀드가 피해를 보지 않는 현명한 대응 방안도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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