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마밀라피나타파이’ 정치인들

입력 2015-07-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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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법이다. 그러니 요렇게 조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예수님도, 공자님도 옛날에 다 말씀하셨다.

다음은 마태복음 7장 11~12절.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다음은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제자 자공이 평생 실천해야 할 것을 묻자 공자는 그건 바로 ‘서(恕)’라면서 이 말을 한다.

이런 말씀이 생각난 것은 꽤 길지만 인상적인 단어를 최근에 알게 됐기 때문이다. 칠레 남부 티에라 델 푸에고 지역의 야간(Yaghan)족 원주민이 쓰는 ‘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라는 말이다. ‘서로에게 꼭 필요하지만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 주기를 바라면서, 두 사람 사이에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이라는 뜻이다. 게임이론 중 ‘자원봉사자의 딜레마’와 관련된 말이라고 한다.

이렇게 뜻이 긴 말이 1994년 기네스북에 ‘가장 간단명료한(succinct) 단어’로 등재됐다. 간단명료하다고? 클레멘스 베르거라는 오스트리아 극작가는 ‘번역하기 가장 어려운 말’이라고 했던데? 그는 올해 36세인데 이런 언급이 인터넷에 소개될 정도면 영향력이 큰 작가인가 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을 한마디 명사로 요약했으니 간결하고 간단명료한 단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우리말로 하자면 참 거시기한 상황을 아주 거시기하게 잘 거시기해 준 단어다.

그런데 이 ‘마밀라피나타파이’적 상황은 요즘 우리 정국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 않은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 문제 말이다. 이 문제의 처리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마밀라피나타파이적 눈빛을 주고받았고, 그 눈빛에 오갈이 든(실례!) 김 대표가 유 원내대표에게 마밀라피나타파이적 눈빛을 전달하고 주고받은 결과 우여곡절 끝에 8일 유 대표가 사퇴한 거 아닌가?

그는 사퇴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를 거론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은 ‘마밀라피나타파이(이걸 틀리지 않게 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공화국’ 같은데?

어떤 사람이 “오글거린다는 말이 생긴 이후 사람들은 진지한 말을 하지 못하게 됐고, 멘붕이라는 말이 생긴 이후 사람들의 멘탈은 엄청나게 약해졌다”고 갈파했지만, 마밀라피나타파이라는 말을 알고 나면 우리 정치는 더 나빠지는 게 아닐까?

좌우간 이제부터 마밀라피나타파이처럼 생소한 제주도 방언을 이용해 이 ‘마밀라피나타파이 정국’을 정리해본다. 정치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가 경고르난 나가 영하지게.”(네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그러는 거지 네가 안 그러는데 내가 그러겠니?) 겡상도 말로 바꾸면 “니 그카이 내 그카지 니 안 그카믄 내 그카나?”

그런데 정치인 여러분, 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 대해 “이무신 거엠 고람 신디 몰르쿠게?”(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요?) 아아, 역시 정치인들은 이해가 늦으셔. 그러니 이제부터 “강방왕고릅써.”(저기 가서 본 다음 다시 와서 말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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