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 이유는 이렇다. 간단히 말해서 양당제 아래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사실은, 당연히 의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의미이고, 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정당이 행정부를 구성하게 돼 있어 이른바 ‘권력 융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은 다당제여서 의원내각제를 한다 하더라도 특정 정당이 의회의 과반을 차지하는 일이 없고, 그래서 특정 정당이 의회와 행정부를 동시에 지배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일찍부터 영국은 독재자의 출현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지금 영국의 정치제도를 ‘수상정부’라고 부르며, 집권당의 당수가 행사하는 광범위한 권력들이 너무 막강하다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수상정부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수상의 권력이 너무나도 막강해 의회의 필수적 역할을 손상시키고 내각의 집단적 의사결정의 일부 기능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개인 통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이 한 사람의 수중에 있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아무도 영국의 수상을 독재자로 보지 않는다. 정치학자 패트릭 고든 워커는 그 이유를 영국 정당 내의 계파에서 찾는다. 영국의 정당에도 다양한 계파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계파는 서로를 견제한다. 그래서 집권당의 특정 계파가 수상을 배출한다 하더라도 이 수상은 다른 계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상이 독단적으로 뭔가를 수행할 수 없다. 이것이 이른바 ‘내각 정부론’인데, 이 주장에 따르면 정당 내부에 존재하는 계파는 민주주의를 해치는 해악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특정인 혹은 특정 정당의 독주를 막는 ‘민주주의의 지킴이’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당의 계파는 ‘민주주의의 지킴이’는커녕 민주주의를 혼란에 빠뜨리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 정당 내의 계파는 이념적 동질성을 갖는 이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라, 줄 잘 서서 자신의 계파 보스에게 충성해 공천이나 받는, 수단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 계파가 다른 계파에 밀린다는 사실은 자기 자신이 공천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래서 계파와 자기 자신의 정치생명을 동일시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계파 간의 관계는 ‘견제’가 아닌 ‘투쟁’으로 바뀌게 된다. 이렇듯 계파 간 투쟁이 발생하면, 이 투쟁은 자신의 모든 정치생명을 건 투쟁으로 비화하게 된다. 이 투쟁에서 진다는 건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 투쟁은 어떤 룰도 존재하지 않는 무한 투쟁이 된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계파는 민주주의를 혼란에 빠뜨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지금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이 겪는 내홍도 따지고 보면 다 여기에 이유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옳고 정의롭다거나, 상대는 옳지 않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이분법적 논리 적용은 불가능하다. 저마다 자신의 정치생명과 정치적 포부를 달성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싸움은 끝나기도 힘들다. 한쪽이 스스로 정치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한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과거와 같이 걸출한 보스가 당 내에 있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비노(비노무현)계 측이 계속해서 신당창당론을 흘리고 있고, 새누리당 내에서 유승민 원내대표로 상징되는 비박(비박근혜)계들이 계속해서 유 원내대표의 사퇴불가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할 수는 있지만, 내가 지지하는 측은 정의롭고 반대쪽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분법을 버려야 한다. 정치는 최선을 선택하는 과정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