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진의 루머속살] 우리 안의 양치기 소년

입력 2015-07-06 10:56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자본시장부 차장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신뢰 저하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주식시장을 보고 있으면 이솝 우화 중 하나인 ‘양치기 소년’이 떠오른다. 본인들은 중장기 투자자로서 추가 주식 매입을 공언하고도 주가 급등 후 바로 팔아치워 막대한 수익을 보는 헤지 펀드에서부터 자사주 매각은 없다고 밝힌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자사주를 처분하는 대기업까지 ‘양치기 소년’과 같은 행태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은 가장 공신력 있어야 할 정부 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코스닥시장을 출렁이게 했던 ‘가짜 백수오’ 파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소비자보호원은 코스닥 상장사인 내츄럴엔도텍이 가짜 백수오를 판매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검찰의 결론은 일반 소비자를 더욱 당황케했다. 제품 원료 중 3%가 백수오가 아닌 이엽우피소가 섞여 있으며 회사측의 고의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엽우피소는 유해성이 입증이 되지 않은 상태이고 대만과 중국에서는 식품 첨가제로도 사용된다.

만약 소비자보호원이 섣부르게 ‘가짜 백수오’라고 밝히지 않고 정확한 진상조사를 통해 “3%가 백수오가 아닌 이엽우피소가 섞여 있고, 이엽우피소는 논란이 있지만 중국 등에서는 사용되는 약초”라고 발표했다면 어땠을까. 내츄럴엔도텍 주주들과 회사, 심지어 홈쇼핑 업체들의 피해, 우리 사회의 혼란은 이 정도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진실을 둘러싼 공방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어 왔다. 일부 정치인과 기업의 도덕관념을 새삼 부각시켜 탓할 필요도 없다. 다만 진실을 함부로 내세우는 행위가 당연시되고 있고, 이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진실은 거짓이 아닌 사실, 옳고 그름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가공하지 않은 사실을 말한다. 실체적 진실은 그래서 법리적 진실을 포괄한다. 결정적 증거가 없다고, 증인이 저세상 사람이 됐다고, 힘 좀 쓸 수 있다고, 끝까지 거짓으로 일관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라면 그 사회의 미래는 암담하다.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촉진시키는 신뢰, 규범을 일컫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란 개념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은 이런 신뢰가 없다면 우리 사회의 공동선(善) 추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왜군과 싸울 병사 모집을 위해 노비 면천 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흐지부지 됐고 목숨을 걸고 싸웠던 노비들은 다시 노비로 귀속됐다. 이후 병자호란을 비롯해 국가적 환란에 목숨 걸고 나선 이들의 숫자는 급감했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움직이는 정부, 대기업 등이 ‘양치기 소년’의 행태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렇게 자신들의 목적 달성만 하면 그만인 행태는 반드시 경로 의존성을 가진다. ‘양치기 소년’은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도 오지 않아 결국 늑대에 죽음을 당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