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하지만 구슬이 있다고 저절로 꿰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제품이나 서비스로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에 접하게 된다. 얼마나 힘들면 이 시기를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이하 데스밸리)이라고 부르겠는가.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현실에 맞게 다듬고 적절한 기술과 조합해 시장에 내놓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창업보다 더 중요한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기술사업화’가 중요한 이유다.
기술사업화는 비즈니스 아이디어나 기술을 제품화하여 시장에서 매출을 발생시키고, 투자금을 회수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말한다. 상용화에 필요한 연구개발(R&D) 자금 확보, 특허의 확보와 관리, 마케팅과 판로 확대, 법률 및 조세 문제 대응 등은 개인이나 초기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외부 전문기관이나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사업화를 추진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000년 기술사업화촉진법을 제정하고, 이후 신성장동력펀드 등을 통해 창업자금을 수혈해주고, 공공기술 이전 및 사업화 전담인력 육성 등에 앞장서 왔다. 지난달 25일과 26일 이틀간 열린 ‘2015 기술사업화대전’은 산학연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그간의 성과를 돌아보고 격려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여러 가지 부대 프로그램이 진행됐는데 필자가 특히 눈여겨 본 것은 ‘비즈니스 모델 경진대회(BM Competition)’였다. 창의적인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접수받아 서류 평가와 발표 평가를 거쳐 최종적으로 다섯 개 과제를 선정하고 시상했는데, 재기발랄하면서도 따뜻한 아이디어들이 눈에 띄었다.
이날 대상을 받은 ‘이어링’은 이어폰에 오디오 광고를 접목한 제품이다. 스마트폰 이용자의 40%가 하루 평균 3회 이상 이어폰을 이용하는데, 이어폰을 연결하고 실행할 애플리케이션을 선택하는 동안 약 20초 내외의 유휴 시간이 발생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 시간을 이용해 힐링 멘트나 광고를 내보내는 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정부의 마케팅 지원을 받아 이달 중 정식으로 베타 서비스를 오픈한다. 일상의 습관을 놓치지 않고, 모바일 오디오 광고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셈이다.
행사 기간에 열린 의미 있는 이벤트 중 또 하나는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 기술사업화협의체에 참여해 참여기관 수가 19개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기술사업화협의체는 부처별로 쪼개져서 관리되는 공공 R&D 결과물을 한데 모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필요에 따라 기술사업화 전담기관인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주도하여 지난해 4월 구성한 협의체다. 창조경제의 성과 창출을 위해서는 부처별, 기관별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협의체에 참여 중인 부처별 사업화 담당기관들과 중견기업연합회 등 관련 협단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기업들의 사업화 애로를 듣고 함께 해결하고 있다. 이제 KOCCA의 합류로 기술사업화협의체가 다루는 분야는 국방, 에너지, 보건, 환경에서 문화기술(CT)로까지 확대됐다. 다양한 기관들의 참여로 앞으로 기술사업화 분야에서 좋은 시너지가 기대된다.
초기 기업이라면 데스밸리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스밸리를 반드시 지나야만 비로소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데스밸리 국립공원은 북미에서 제일 덥고 건조하기로 악명이 높지만, 자연이 만들어내는 극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지 않은가. 정부와 관계기관들이 창조경제 인프라를 탄탄하게 구축해 놓은 만큼, 기업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데스 밸리’의 어려움을 ‘희망 밸리’라는 기대로 바꿔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좋은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사장되지 않고, 잠재력 있는 기술과 제품이 빛을 볼 수 있도록 그 길에 KIAT와 기술사업화협의체가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