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연세대 특임교수, 전 국회의원
우선 메르스 추경을 거론할 때 두 가지 목적의 추경이 혼재하고 있기 때문에 구분할 필요가 있다. 메르스 종식을 위한 추경과 메르스로 인해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추경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메르스 맞춤형 추경이라고 일컬어지는 유형이 주로 전자에 해당하며 국가방역망 체계 정비, 감염병 관리기구 강화, 보건의료 시스템 개선, 확진·격리 환자에 대한 생활보호 등에 필요한 예산이다. 사실 이런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 예산을 배정해 두는 것이 예비비다. 2015년 한 해만 해도 3조64억원의 예비비를 배정해 두었기 때문에 이 예비비를 활용하는 것이 먼저다. 2015년의 경우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처럼 목적이 정해진 목적예비비가 아니라 어떤 용도로든 쓸 수 있는 일반예비비도 1조2000억원이나 된다.
그러면 후자에 해당하는 메르스로 인해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경기 부양용 추경의 필요성은 어떠한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한 이래 우리나라는 8년째 지속적으로 경기부양책만 펴고 있다. 팽창적 통화정책과 팽창적 재정정책을 모조리 동원한 지 어언 8년째다. 급기야 5%였던 금리를 1.5%까지 인하하는 극도의 팽창정책을 썼지만 효과는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메르스가 발발하기 직전 OECD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을 3.8%에서 3.0%로 하향조정했다. 한마디로 경기부양책의 효과는 없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반면 극도의 초저금리는 많은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집주인들의 반전세 혹은 월세로의 전환으로 인한 전세품귀 현상과 초저금리 및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에 내몰려 빚 내서 집 사는 서민들이 올 가을로 예상되는 미국발 금리인상의 파도를 넘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11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의 규모만 우려되는 것이 아니라 가처분소득 대비 이미 160%를 넘었다는 위험도 때문에 대한민국이 전 세계 가계부채 위험국 반열에 올랐다. 2008년 전 세계를 경기침체의 늪으로 몰아넣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바로 미국의 경우 이 비율이 129%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우리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추경은 국가부채마저 가중시키게 된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올해 예산안을 편성할 당시인 작년 9월에 전망했던 4.0%보다 1%포인트 이상 하락할 것이란 공감대는 OECD나 IMF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 우리나라 정부기관마저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수탄성치가 1.05 정도임을 감안하면 국세수입이 계획보다 1% 이상 모자랄 수밖에 없다. 한 해의 절반도 안 된 5월 말 기준 통합재정수지 적자 누계분이 9조원을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여기에 추경을 한다면 이미 GDP 대비 39%를 넘어선 국가채무는 한국경제에 또 하나의 시름을 더하게 될 뿐이다.
메르스로 인한 경기침체는 그 원인이 정부의 미숙한 대응과 실기에 있다. 정부를 믿지 못하는 불신과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불안 때문이지 금리가 높아서 또는 예비비가 모자라 경기가 침체되는 것이 아니다. 에볼라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미국 정부는 국민의 불안감을 정확하게 정조준했고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에볼라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을 수 있었다. 정부는 환자의 주소, 이동경로를 즉각 공개했다. 환자가 다녀간 식당뿐 아니라 볼링장까지 공개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환자가 다녀간 식당을 즉각 철저히 소독하고 완벽하게 방역이 마무리되었음을 검증한 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이 가족들과 직접 가서 미트볼 한 접시를 깨끗이 비우는 장면을 방송에 내보내 안전함을 입증했다. 뉴욕시민들이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안심시켜 주었다. 식당에 고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도록, 과도한 불안감 때문에 경기가 침체되지 않도록 멋지게 마무리한 것이다.
메르스는 메르스로 잡는 것이 정공법이다. 메르스를 빌미로 지난 8년간 효과보다 부작용이 만만치 않음이 이미 입증된 경기부양의 유혹에 빠져 추경의 길을 택한다면 한국경제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