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먼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대통령의 입장은 상당히 난처해진다. 청와대는 여태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거론해 왔는데, 만일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자기 논리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리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국민적 여론이 대통령에게 불리한 상태인데, 이런 상황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마치 국회에 밀렸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국민적 여론이 안 좋은 상태에서 국회에 밀렸다는 인상을 주면, 이른바 레임덕이 일찍 올 수 있다.
바로 이런 면에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어떤 정국이 펼쳐질지를 생각해보자.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서 다시 재의결하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재의결에 의해 법이 다시 통과되는 상황과 그렇지 못한 상황으로 또다시 나눌 수 있다. 국회가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해 법으로 확정될 경우, 청와대는 그야말로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국회의 대결 양상에서 청와대가 일단 한 방 먹은 셈이 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곧바로 레임덕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여당의 입장도 그리 좋다고 볼 수만은 없다. 청와대가 레임덕에 빠지면 야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모든 사안을 걸고넘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당은 당연히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국회에서 재의결을 했는데, 법이 부결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청와대는 승리한 셈이 되고, 새누리당 지도부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 야당과 어떻게든 합의를 본 상황이고, 그 총대는 지도부가 멨는데 이것이 통과되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그 책임을 지도부가 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지도부,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가 받는 정치적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로부터 불신임받고 동료 의원들로부터 버림받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초래되면 유승민 원내대표는 자진사퇴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김무성 대표의 책임론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지도부를 몽땅 바꾼다는 것도 새누리당으로선 부담스러운 일이라 김무성 대표는 상황에 따라 자리는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무성 대표가 대선을 생각한다면, 이미지에 나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정의화 국회의장도 마찬가지다. 정의화 의장이 나서서 중재안을 만들지만 않았어도, 재의결 결과 여부가 의장의 권위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지만, 본인이 만든 중재안을 청와대가 거부하고 국회마저 거부하는 상황이 초래되면 정 의장 본인의 체면도 망가지게 된다.
또 한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국회법 개정안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다시 국회로 넘어갔는데 국회의장이 곧바로 재의결에 부치지 않고 그냥 갖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는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의 타격이 가장 약한 경우다. 청와대는 분명한 의사 표현을 한 셈이고, 새누리당 지도부는 재의결이 현실화됐을 때 나타날 정치적 부담과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면 정의화 국회의장의 입장은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본인이 나서서 중재한 법인데, 이걸 그냥 깔아뭉개고 있다면 본인의 책임을 방기하는 꼴이 된다.
이런 시나리오를 종합해 보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누군가는 정치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타격을 입을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향후 정국의 구도, 더 나아가서는 대선구도도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