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알렉시스 치프라스, 이 남자의 도박

입력 2015-06-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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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팀장

제우스와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헤르메스’는 독특하고 다양한 신격을 가진 신으로 회자된다. 그는 부와 행운의 신이자 제우스의 전령으로서 발명과 상업, 목축, 이성, 학예를 비롯해 도박, 격투, 도둑질까지 다양한 경계를 넘나든다고 한다.

이런 복잡하고 다양한 얼굴을 가진 헤르메스의 후예여서일까.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의 도박사 근성에 전 세계가 혀를 내두르고 있다.

벌써 5년째다. 앙겔라 메르켈, 크리스틴 라가르드, 볼프강 쇼이블레, 장 클로드 융커, 마리오 드라기, 트로이카, 국제 채권단, ECB, ELA, 구제금융 등 낯선 사람들의 이름과 용어들이 매일 지면에 오르내리며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한 게 말이다.

올해 초에는 여기에 ‘알렉시스 치프라스’라는 이름 하나가 더 늘었다. 치프라스는 올 1월 치러진 그리스 총선에서 승리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당수이자 그리스 현대 정치 사상 최연소 총리다. 그는 호감 가는 외모와 고교 시절부터 남달랐던 리더십, 여기에 젊은 패기로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치프라스가 집권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지만 현재 그는 벼랑 끝 전술로 국제사회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지난 주말 채권단과의 최종 협상에서 이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15일 회동에서도 가까스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채권단의 연금 삭감과 세금 인상, 재정적자 일정 수준 유지 등의 요구를 거부했다. 오히려 채권단이 현실주의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다시 으름장을 놓았다.

서양에 “빚이 수천 단위이면 은행 쪽이 갑이지만 빚이 수백만 단위이면 대출자인 을이 승리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치프라스 총리의 현재 처세를 정확하게 대변해 주는 대목이다.

치프라스 총리가 국제 채권단의 요구에 굴하지 않고 버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010년 유럽 재정위기를 촉발시킨 그리스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악의 시기보다는 개선됐다고 해도 4명 중 1명이 실업자인 상황도 여전하고, 경제도 지난 3월 말 시점에 리세션(경기 침체)으로 퇴보했다. 이전 6년간의 침체기에는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 이상이 증발했다.

그리스 정부는 디폴트를 피하기 위한 이자 지급과 원금 상환, 임금과 연금 지급을 우선시해왔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다. 치프라스 총리가 채권단과 흥정을 하며 버티면 버틸수록 상황은 더 악화일로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의 국내 은행에 국채 보유 규모를 늘리지 말도록 경고함에 따라 그리스 정부는 자금줄 하나를 잃었다. 예금 유출도 심각하다. 그리스 정부는 국가금융안정기금을 통해 정부에서 그리스의 4대 은행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은행의 가치는 대선 실시 발표 전날인 작년 12월 7일의 반토막 수준이 됐다. 안토니오 사마라스 전 정권을 붕괴시키고 들어선 반(反) 긴축 정권이 만든 결과다. 사마라스 정권 말기, 그리스는 채권단과 1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에 합의했다. 그러나 올 4월까지 구제금융 규모는 400억 유로로 불어났다.

국제사회도 점점 지쳐간다. 그리스의 디폴트도,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도 이미 염두에 두고 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그리스의 미래는 이미 도박판에 올랐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그리스의 게임 이론가(집권자)들이 자국의 미래를 놓고 도박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스는 이달에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부채 15억3000만 유로를 일괄 상환한다 해도 내달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78억3400만 유로를 갚아야 한다. 채권단이 아직 지급하지 않은 구제금융 분할금 72억 유로를 지원받지 못하면 7월 디폴트는 피할 수 없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그리스는 더 이상 도박을 할 시간이 없다. 디폴트를 향한 초시계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 치프라스는 언제까지 헤르메스의 장난에 놀아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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