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 6월 15일 激濁揚淸(격탁양청) 흙탕물을 없애 맑은 물을 끌어올린다

입력 2015-06-1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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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한서(漢書)’를 편찬한 반고(班固)의 동생 반초(班超)는 후한 명제(明帝) 때 서쪽의 50여 나라를 복속(服屬)시켰다. 그 공으로 지금의 신장성 위구르 자치구에 있던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의 도호(都護·총독)가 됐다. 그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후임 임상(任尙)이 인사차 찾아와 서역을 다스리는 방책을 물었다.

반초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너무 엄격하고 조급해 보이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모이지 않고[水至淸則無魚],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는 법[人至察則無徒]이지. 너무 엄하기만 하면 안 되니 대범하게 다스리시게.”

임상은 너무도 평범한 이야기에 크게 실망하고 돌아갔다. 그 뒤 반초의 충고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통치하다가 반발을 불러 결국 서역의 지배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부정과 악을 원수 보듯 미워하는 사람들은 모 나지 않기가 참 어렵다. 도학정치를 지향했던 정암 조광조는 개혁 속도를 좀 늦추고 훈구파와도 원만하게 어울리며 정치를 할 수 없었을까. 아마 다시 태어난다 해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미인곡 등으로 유명한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훌륭한 시인이었지만 동 시대의 김장생(金長生·1548~1631)으로부터 “정직하고 티가 없음을 믿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해 세상의 미움을 산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융통성 없고 타협을 모르던 그는 허물이 보이면 절친한 친구든 벼슬이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격탁양청(激濁揚淸), ‘격렬하게 부딪혀 흙탕물을 흘려버리고 맑은 물을 끌어 올린다’는 삶이었다. 선을 선양하고 악을 제거한다는 이 말은 당서(唐書) 왕규전(王珪傳)에 나온다. 그런 정철은 대낮에도 취할 만큼 술을 좋아한 사람이었다. 박시백의 인기만화 ‘조선왕조실록’에는 ‘술꾼’ 정철의 코가 빨갛게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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