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수가(須賈)의 모함으로 모진 고문을 받은 범저는 죽다 살아난 뒤 장록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숨어 살다가 진(秦)으로 달아나 재상이 되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수가를 다시 만났다. 진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위 나라가 수가를 사신으로 보낸 것이다.
장록을 만나본 수가는 그가 바로 범저인 것을 알고 혼비백산해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범저가 죄상을 묻자 수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 머리털을 모두 뽑아서 잇는다 하더라도 죄가 모자랄 것입니다.”[擢賈之髮以續賈之罪 尙未足] 지은 죄가 머리카락 수만큼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말이다. 탁발막수(擢髮莫數)도 같은 말이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8만~10만 개라고 하는데, 그 많은 머리카락을 다 뽑아[擢髮] 세어 보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難數].
범저는 그를 용서했다. 그 과정은 이랬다. 수가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범저는 일부러 거지나 다름없는 초라한 행색으로 찾아갔다. 날품팔이를 하며 살아간다는 범저의 말에 수가는 안쓰러워하며 자기 자리에 앉게 하고 음식을 대접했다. “범숙(숙은 범저의 자)이 이렇게까지 곤궁하게 되었구려”[范叔一寒如此哉]라며 두꺼운 명주 솜옷도 주었다. 여기서 유래한 일한여차(一寒如此)는 극도로 빈궁한 상태에 이른 것을 개탄하는 말로 쓰인다.
‘명주 솜옷의 의리’라는 제포지의(綈袍之義)도 이때 나온 말이다. 제포지의는 제포연련(綈袍戀戀)이라고도 한다. 범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오늘 그대를 죽이지 않는 것은 한 벌의 제포를 나에게 주며 옛 정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니라.”[公之所以得無死者 以綈袍戀戀 有故人之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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