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남자는 다 애 아니면 개?

입력 2015-05-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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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남자는 다 애 아니면 개’다. 아니다. ‘남자는 다 개 아니면 애’다. 애와 개 중에서 어떤 걸 나중에 말하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진다. 북한 사람들은 뉘앙스를 뜻빛깔이라고 하던데, 그야말로 뜻빛깔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면 개든 애든 남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건 욕인가? 아니다. 욕이 아니라 칭찬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아니다. 칭찬은 아니더라도 귀엽다는 표시 정도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남자는 다 애 아니면 늑대다.’ 이런 말을 듣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애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개는 또 얼마나 귀여운가? 개는 충성스럽고 거짓이 없고, 자기들끼리 또는 인간과 사랑을 주고받을 줄 안다는 점에서 사람보다 훨씬 나은 점이 있다.

개의 유일한 단점은 사람보다 일찍 죽는 거라는 말이 있다. 개는 왜 일찍 죽나? 사람은 살아가면서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걸 배우지만 개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오래 살 필요가 없다. 이 놀라운 통찰은 여섯 살 먹은 아이가 개의 죽음을 슬퍼하는 부모를 위로하면서 한 말이다. 애와 개는 통한다.

남자가 애 아니면 개라는 말은 ‘남자는 도대체 철이 없다, 구제불능이다, 뭘 모른다’는 뜻 아닐까? 남자가 철이 없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작년 추석 무렵 SNS상에서 인기를 끈 사진이 있다. ‘남자는 교육이 필요한 동물입니다’ 이런 제목이었다. “여보, 거기 까만 봉지에 있는 감자 반만 깎아 삶아 줘요”라는 말을 들은 남편이 감자를 다 반씩 깎아서 냄비에 담아 놓은 사진이었다. 전체 분량의 반을 깎으라는 건데 전부 다 반씩 깎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하는 동안 ‘이 아까운 걸 왜 반씩 깎으라고 하지?’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걸 본 순간 ‘야, 이건 완전 내 이야기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그런 게 일상적인 일이고 다반사니까.

언젠가 아내가 몹시 아파 끙끙 앓을 때 차(무슨 차였는지 잊었음)를 대신 끓여 놓는답시고 유리병에 물을 붓고 불판에 얹었다. 유리병 올려 놓은 걸 잊지 말아야지 하다가 역시 걱정한 대로 잊고 있었는데(이런 게 머피의 법칙이던가 아니던가?), 갑자기 퍽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유리병의 밑바닥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온통 물바다가 돼야 할 판이었지만 불이 워낙 뜨거워서 그런지 지글지글 자글자글 그러더니 물기도 시익 없어져 버렸다.

또 한 번은 빨래를 해준다는 착한 마음에서 바구니에 가득 담긴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고 어찌어찌 겨우 작동을 시켰다. 그리고 빨랫줄에 갖다 널고 큰일을 했다는 성취감 속에 칭찬을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혼만 났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느냐, 내 죄가 뭐냐? 터진 입으로 나는 열심히 항의했다.

세제도 넣지 않고 무모하게 세탁기를 돌림으로써 아까운 전력을 낭비한 죄! 바쁜 아내에게 빨래를 두 번 하게 만든 죄! 나는 그냥 기계를 돌리면 그놈이 알아서 약도 뿌리고 씻고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두드리고 짜고 헹궈주는 줄 알았지 뭐.

그렇게 깨지고 혼날 때마다 내가 늘 하는 말은 “학교 댕길 때 공부만 하다 보니…” 아니면 “학교 댕길 때 배우지 않아서”다. 그러면서, 여학생들은 포크댄스를 배웠지만 남학생들한테는 그런 거 가르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곤 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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