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영상·공연화] 영상화-공연화 원작의 힘은?… 원작 활용 한 세기

입력 2015-04-17 10:58수정 2015-04-17 10:58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영상과 공연시장이 확대되고 콘텐츠 제작환경과 마케팅 전략이 급변하면서 원작을 활용한 콘텐츠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영화 초창기인 1920년대 무성영화인 윤백남 감독의 ‘운영전’, 이경무 감독의 ‘심청전’ ‘장한몽’, 이규설 감독의 ‘농중조’ 등 대부분은 일본 연극이나 고전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그로부터 90여년이 흘렀다. 최근 관객을 만난 이종훈 감독의 ‘고양이 장례식’은 동명 웹툰이 원작이고, 요즘 상영되고 있는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은 소설가 김훈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KBS가 1962년 개국 기념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이기하 PD)를 방송했다. KBS 첫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는 유치진 희곡이 원작이었다. 그로부터 53년이 흐른 2015년의 안방극장. SBS ‘하이드 지킬, 나’, ‘냄새를 보는 소녀’, ‘하녀들’은 각각 웹툰과 소설을 드라마화한 작품이고 8월 방송 예정인 ‘저녁 드실래요’ 등 제작을 준비 중에 있는 드라마 상당수가 웹툰 등 원작을 활용한 것들이다.

원작을 활용하는 것은 영화, 드라마 등 영상물뿐만 아니다. ‘대장금’, ‘프리실라’, ‘오페라 유령’ 등 뮤지컬과 연극을 비롯한 공연물 역시 원작을 활용한 경우가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다.

원작을 영상화하거나 공연화한 것은 한국 대중문화 역사와 궤를 함께할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대에 따라 원작으로 활용되는 작품의 양태는 크게 변했다. 전통적으로 영상물과 공연물의 원작으로 가장 많이 활용된 것이 바로 소설이다. 문학적 상상력과 탄탄한 내러티브, 독창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로 무장한 소설은 사극에서부터 현대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와 영화 작품의 원작으로 활용됐다.

이범선의 ‘오발탄’, 김승옥의 ‘무진기행’, 박경리의 ‘토지’에서부터 김훈의 ‘칼의 노래’, ‘화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소설들이 드라마와 영화로 재탄생했고 뮤지컬과 연극의 원작으로 활용됐다. 특히 소설가 고(故) 최인호의 소설은 영상물의 원작으로 가장 많이 사용됐다. ‘해신’, ‘상도’, ‘별들의 고향’, ‘겨울 나그네’, ‘불새’ 등 최인호 작가의 수많은 작품이 영화, 드라마, 연극의 원작으로 활용됐다.

소설에 이어 1980~2000년대에는 기발한 상상력과 영상화하기 좋은 구성으로 짜여진 만화와 10~20대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인터넷 소설 등이 속속 드라마, 영화,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허영만의 ‘미스터Q’ ‘아스팔트 사나이’ 등 적지 않은 만화들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을 거뒀다. 또한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김유리의 ‘옥탑방 고양이’ 인터넷 소설들도 속속 영상물로, 그리고 공연물로 만들어져 관객과 시청자와 만났다.

특히 이 시기 원작으로 가장 많이 활용된 작가는 만화작가 허영만이다. 특히 허영만은 ‘비트’, ‘미스터Q’, ‘아스팔트 사나이’, ‘식객’, ‘타짜’, ‘각시탈’ 등 수많은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대중의 호평을 받았다.

최근 들어서는 기상천외하고 독창적인 스토리나 인물을 내세운 웹툰이 영상물과 공연물의 원작으로 가장 많이 각광받고 있다. 드라마 ‘미생’ ‘닥터 프로스트’ ‘하이드 지킬, 나’ ‘치즈 인 더 트랩’ ‘냄새를 보는 소녀’, 영화 ‘패션왕’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끼’ ‘전설의 주먹’ ‘26년’ ‘이웃사람’, 웹드라마 ‘연애세포’ ‘후유증’,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삼봉 이발소’, 뮤지컬 ‘바보’ ‘순정만화’‘새끼손가락’ 등의 원작이 바로 웹툰이다.

영상물이나 공연물의 원작으로 가장 많이 활용된 웹툰 작가는 강풀과 윤태호다. 강풀의 ‘26년’ ‘그대를 사랑합니다’ ‘순정만화’ 등과 윤태호 작가의 ‘미생’ ‘이끼’ 등이 영상과 공연을 통해 관객과 시청자와 만났다.

이밖에 ‘꽃보다 남자’, ‘데스노트’처럼 외국 드라마나 영화, 만화 등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도 크게 늘었다. 또한 ‘미녀는 괴로워’처럼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과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왕의 남자’, ‘살인의 추억’처럼 영화와 드라마가 뮤지컬 원작으로 활용되고 연극이 영화와 드라마의 원작으로 활용되는 사례도 급증했다.

왜 원작을 영상화하거나 공연화하는 콘텐츠가 급증한 것일까. 최근 방송사 및 외주제작사, 영화사, 공연사의 증가와 국내 방송영상공연산업의 급성장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콘텐츠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기존 작가의 한계와 매너리즘으로 인해 발생되는 드라마, 영화, 공연의 소재와 스토리 빈곤을 타개하는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원작을 활용한 영상화 및 공연화 작업이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원작의 대중성과 유명성, 인기를 이용해 흥행을 하려는 의도도 원작의 영상화와 공연화 작업을 부추기고 있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원작 자체가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영상과 공연의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것도 원작의 영상물과 공연물의 주요한 원인이다. 여기에 한 개의 작품을 여러 부분에서 활용하는 원소스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 전략이 최근 대중문화 산업에서 보편화하면서 원작을 활용한 문화 상품화 작업이 급증했다.

대중문화계는 원작을 활용한 영상화나 공연화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해신’, ‘불새’ 등 자신의 수많은 소설이 영화와 드라마, 연극 등으로 만들어졌던 소설가 최인호씨는 생전에 인터뷰에서 “문학과 영상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권장할 만하다. 두 분야가 독립적인 예술 분야이지만 서로 보완적인 성격을 지닌다면 순수문화와 대중문화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라며 원작의 영상화나 공연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미생’의 윤태호 작가 역시 “‘미생’을 드라마로 만든 것은 또 다른 창작 작업이며 각기 다른 분야에서 윈윈하는 것이다. 웹툰 작가들이 웹툰의 영상화 작업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소설에서부터 웹툰에 이르기까지 원작의 영상을 활용한 드라마나 영화 공연 등 콘텐츠 제작이 줄을 잇지만 성공한 작품보다 실패한 작품이 더 많다. 왜 그런 것일까.

원작의 활용은 영상과 공연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영상과 무대의 특성을 살려 작품화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작품성과 스토리에만 전적으로 기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작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드라마나 영화, 뮤지컬, 연극으로 만들어질 때는 반드시 제2의 창작을 거쳐 영상물과 공연물로 재탄생해야 한다.

‘허준’, ‘상도’, ‘올인’ 등 원작을 활용한 드라마를 많이 집필한 드라마 작가 최완규는 “원작 활용은 드라마 소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원작과 드라마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원작을 활용한다 하더라도 드라마는 하나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재창작을 해야 한다. 물론 원작의 주제 의식은 살려야겠지만 그 동안 원작이 있는 드라마를 집필할 때 원작의 활용도를 계량화한다면 20~30%에 불과하다. 70~80%는 순전히 드라마적 창작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미생’을 성공적으로 이끈 김원석 PD는 “드라마라는 영상물의 특성에 원작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잘 녹여내는 것이 원작을 활용한 영상물 성공의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원작의 대중성과 인기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방송사나 영화사, 공연사의 의도만 있고 원작을 뛰어넘는 제2의 창작이라는 엄청난 노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원작의 영상화나 공연화는 성공할 수 없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