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와 그랜드슬램, 그리고 명예의 전당 [오상민의 스포츠 인물사]

입력 2015-04-0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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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가 LPGA투어 통산 13승을 달성했다. 이제 그의 목표는 그랜드슬램과 명예의 전당 입성이다. (뉴시스)

“다음 세대의 여성들이 골프채를 잡고 꿈을 쫓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한 여성 프로골퍼의 수상 소감엔 벅찬 감동이 녹아있었다. 지난 2013년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박인비(27ㆍKB금융그룹)다. 당시 박인비는 메이저 대회 3연승 포함 한 시즌 6승을 휩쓸며 올해의 선수가 됐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개척자 박세리(38ㆍ하나금융그룹)도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하지만 박인비는 벅차오르는 감격을 억제했다. 아직 그가 넘어야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박인비는 한국 여자골프의 에이스이자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실력자다. LPGA투어 활약 한국인 선수들의 맏언니 박세리가 개척자였다면 박인비는 정복자다. 박세리는 포문을 열었고, 박인비는 LPGA 정점에 태극기를 꽂았다. 그 첫 번째 봉우리는 올해의 선수상이었다.

박인비는 대표적인 ‘세리 키즈’다. 어린 시절 박세리의 활약을 보며 골프선수 꿈을 키웠고, 그 꿈은 의외로 빨리 이뤄졌다. 2007년 열아홉 나이에 LPGA투어 무대에 뛰어든 박인비는 이듬해인 2008년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전 세계 골프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스무 살 어린 박인비에게 메이저 대회 우승은 오히려 독이 됐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은 스포트라이트는 박인비의 어깨를 짓눌렀다. 스윙은 흐트러졌고, 멘탈은 붕괴됐다. 결국 박인비는 US여자오픈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들며 은퇴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온가족이 똘똘 뭉쳐 골프만 바라보고 달려왔지만 슬럼프 수렁은 깊고 잔인했다.

▲지난 2013년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박인비. 한국인 첫 수상이지만 그는 아직 갈길이 멀다. (뉴시스)

그러나 박인비가 선택한 건 은퇴가 아닌 일본행이었다. 한국에서는 가깝고 미국보단 수월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로 무대를 옮겨 분위기를 전화했다. 그리고 스윙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쳤고, 전매특허 쇼트게임을 완성해갔다. 결과는 좋았다. 박인비는 JLPGA투어 우승컵을 하나둘씩 챙기며 자신감을 회복했다. 바로 그것이 2012년 기적과 같은 부활의 원동력이었다.

일본에서 LPGA투어로 복귀한 박인비는 그해 상금왕과 최저타상을 수상했고, 2013년에는 다승왕과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며 ‘여제’ 자리에 올랐다. 특히 메이저 대회 3연승 기록을 달성하며 사상 첫 캘린더 그랜드슬램에까지 도전했다.

이제 그의 목표는 그랜드슬램과 명예의 전당 입성이다. 그랜드슬램 달성을 위해서는 브리티시 여자오픈이나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해야 한다. 박인비는 2013년에만 메이저 대회를 세 차례나 우승한 실력자다. 앞으로 두 대회 중 한 개 대회 우승 가능성은 충분하다.

올해 HSBC 위민스 챔피언스 우승으로 통산 13승을 달성한 박인비는 명예의 전당 입회 조건도 충족시켜가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두 번은 없을 슬럼프를 극복했다.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성실성과 강철 같은 멘탈 테크닉도 혹독했던 슬럼프 극복을 통해 만들어졌다. 뒤늦게 찾아온 박세리의 슬럼프와는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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