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그런데 어째 받은 만큼 고맙지가 않다. 우리에 대한 몰(沒)역사적 태도 때문이다. 외교든 국방이든 진정한 우방이라면 우리의 역사나 민족적 감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터인데, 이게 영 그렇지 않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서 그렇다.
우선 해방 후 군정을 통해, 또 이승만 정권의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친일인사들을 대거 재등장시켰다. 무슨 이유에서였든 이 일로 우리 사회에서는 정의의 관념이 무너졌다. 독립투사들이 역사의 뒷길로 사라지고 친일인사들이 다시 등장하는 나라에 옳고 그름이 바로 설 수 있었겠는가. 일종의 원죄가 되어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패전국 일본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도 그렇다. 5차 초안까지는 독도를 우리 영토로 했다가, 6차 초안에서는 일본 영토로 했다. 그러다 7차 초안 이후에는 아예 독도를 조약의 내용에서 빼 버렸다. 이 역시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다.
그 뒤로도 늘 그랬다. 우리의 역사나 민족적 정서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듯했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을 경계하기 위한 ‘땅’으로서의 의미만 부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있었던 셔먼 국무차관의 발언, 즉 일본의 저급한 역사인식에 대한 우리 정치 지도자의 비판을 ‘값싼 박수나 받기 위한 도발’이라 한 것은 이러한 몰역사적 인식의 좋은 예이다. 국무성의 해명으로, 또 리퍼트 대사에 대한 테러에 덮여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것이 미국의 본심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곧 있을 아베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도 그렇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의향을 문제 삼아 고이즈미 총리의 연설을 허락하지 않았던 2006년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이번에는 별 조건 없이 아베 총리를 상하 양원 합동 연단에 세운다. 그것도 4월 29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히로히토 국왕의 생일인 ‘쇼와(昭和)의 날’에 말이다.
이런 상황에 중국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이 세계 1위로, 이미 미국을 제치고 있는 나라다. 국방비 또한 매년 10% 이상을 증액하며 미국과의 군사력 격차를 줄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있어 인접 강대국이자 제1의 교역국이다.
우리로서는 머리 아픈 일이다. 하기 좋은 말로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 하는데, 그게 지켜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며칠 전 보아오포럼에서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아시아 국가들에 ‘운명 공동체’를 만들자고 했다. ‘운명 공동체’라는 말이 무엇이겠나? 그러한 분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미국보다 중국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신실크로드 계획인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우리가 빠질 수 없는 계획들이 있는 데다, 안보문제 역시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제어해 줄 수만 있다면 중국 주도의 안보공동체 구상을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리적 관점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이겠나. 그 이면에는 다분히 정서적인 무엇도 있다. 즉 미국의 몰역사적 태도가 한몫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셔먼 발언 이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띄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걱정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나라다. 한미동맹 또한 북한 문제를 넘어 중국과 일본의 충돌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최소한 우리가 중국의 힘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가질 때까지, 또 그래서 동북아에서의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는 때까지는 그렇다.
그런 점에서 미국에 바라는 바가 있다. 우리의 역사와 민족적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주었으면 한다. 큰 나라는 큰 나라다워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는 국가에 손뼉을 치는 나라는 더 이상 큰 나라가 아니다. 같이 해야 할 이유도, 따라가야 할 이유도 없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잘 판단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