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이 잊고 있던 봄 감성을 깨웠다. 봄…. 참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개나리ㆍ진달래ㆍ벚꽃으로 울긋불긋 물들 거리를 생각하니 머릿속엔 ‘나들이’란 세 글자가 스치고 지나간다.
봄은 틀림없이 희망이다. 하지만 봄 햇살에도 그늘은 있다. 매년 봄, 모두가 희망을 노래할 때 아픈 가슴을 움켜잡고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3월 10일. 잊고 싶지만 잊어서는 안 될 날이다. 7년 전 이날, KIA 타이거즈 야구선수 이호성이 차가운 강물 속으로 투신자살했다. 1990년대 ‘해태 왕조’의 거포 계보를 이을 ‘아기 호랑이’로 주목받던 그였다. 한때 공포의 해태 타선에서 4번 타자로 활약했다. 하지만 그는 살인마 오명을 뒤집어쓴 채 세상을 떠났다.
2000년대 초반 은퇴한 이호성은 예식장과 경마장 사업에 도전했지만 실패를 맛봤다. 이후에는 수차례 사기를 당하며 선수시절 벌었던 재산을 탕진하고 빚에 시달렸다. 그리고 2008년 2월 내연녀와 그의 딸 세 자매를 살해한 뒤 암매장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대체 무엇이 이호성을 살인마로 만들었을까. 김봉연 전 해태 타이거즈 선수이자 극동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그의 조기 은퇴는 선수 체벌과 무관하지 않다고 귀띔했다. 당시는 체벌을 견디다 못해 은퇴를 결심한 선수들이 많았단다.
이미 오래 전 얘기다. 요즘은 누가 맞아가며 운동하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운동선수들의 체벌문화는 세월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운동선수들의 도를 넘은 체벌 소식이 그것을 입증한다.
요즘도 체벌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포기하는 유망주들이 적지 않다. 사실 운동선수와 체벌문화는 뿌리가 깊다. 십수년 전만 해도 운동선수들의 체벌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한 체육대학에서는 매년 ‘운동선수와 체벌의 상관관계’ 토론을 벌였지만 과반수가 넘는 학생이 체벌에 찬성했을 정도다.
혹독한 체벌로 단련된 선수는 악바리 근성을 발휘하고 누구와 만나도 지지 않는 경기를 펼친다는 게 체벌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그 정도 체벌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 상대와 싸워 이기냐는 것이다.
운동선수의 체벌은 상하 주입식 훈련 구조를 유지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훈련 중 선배ㆍ코치의 체벌은 묻지 마 복종ㆍ의리라는 비정상적인 인관관계의 원인이기도 하다. 혹독한 체벌 앞에서도 진심에서 우러나는 존경심과 합리적인 사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기대할 수 있을까.
까마득한 옛 이야기 같지만 아직도 체벌 정당론을 주장하는 체육인이 많다. 지난해 5월에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유도 은메달 리스트 왕기춘(27)이 SNS를 통해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 한다”며 용인대 유도부의 체벌문화를 옹호하는 글을 올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엘리트스포츠와 승리지상주의가 낳은 폐해다. 사람마다 체벌로 인해 느껴지는 무게감이 크게 다르다는 건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누군가는 삶을 포기할 만큼 고통일 수도 있다. 한 명의 영웅을 만들기 위한 체벌이 제 2ㆍ3의 이호성 비극을 재현할 수 있다 해도 지금처럼 체벌 정당론에 당당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