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격차가 무자비하게 확대하고 있다는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학 교수의 이론이 일본에서는 통용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피케티 연구진으로부터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일본의 소득 불평등도 (상위 1% 계층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측정)는 198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상승했지만 최근에는 한계점에 이르렀으며 심지어 하락하고 있는 모양새로 나타났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1% 계층의 소득(자본 소득 제외)이 국민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9.5%에서 정점을 찍은 후 2012년의 9%까지 4년 동안 매년 조금씩 감소했다. 이 자료는 피케티 연구진이 30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 세계 최고 소득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한 것이다.
이같은 일본의 상황은 미국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미국의 경우, 상위 계층의 소득 비중은 금융위기 이후 바닥에서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미국의 상위 1% 계층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17.5%로 4년 전에 기록한 16.7%에서 회복했다.
피케티의 연구를 위해 일본 자료를 제공한 히토츠바시대학의 모리구치 지아키 교수는 “소득 불균형을 초래하는 요인이 일본과 미국은 크게 다르다”며 “미국에서는 임원 보수가 월등하게 많지만 일본에 그런 관례는 없다”고 지적했다.
피케티 교수의 저서 ‘21세기 자본’은 경제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지난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이 책에서는 일본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최근 반세기동안 경제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고 소개됐지만 미국 등 다른 선진국과는 다른 상황이라고 WSJ는 전했다.
피케티 교수와 공동으로 논문을 집필한 UC버클리의 엠마누엘 사에즈 교수는 “일본에서는 특히 임원의 보수가 회사 규정이나 연공서열로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세전 소득 격차가 일반적으로 작다”고 지적했다. 미국 노동총연맹 · 산업별조합회의(AFL-CIO)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최고경영자 (CEO)의 평균 보수가 일반 근로자의 354배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일본은 67배로 낮은 편에 속한다.
히토츠바시대학의 모리구치 교수는 일본의 소득격차 확대가 미국과 차이가 큰 점에 대해 “노동자들이 저임금의 임시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상여금 및 정기 승급이 전통적인 종신 고용제가 감소하고 있다. 모리구치 교수는 “정규직이 아닌 경우 임금 수준이 크게 낮아지고, 또한 세대 간에도 격차가 큰 데 그 이유는 정규직에 고령 노동자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WSJ는 일본의 재산이 다른 나라보다 균등하게 분배되는 상황에도 주목했다. 앞서 아쿠스리서치의 피터 태스커 애널리스트는 니혼게이자이신문 기고문에서 “국제 기준으로 보면 (일본)의 부의 불평등도는 낮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상위 10%가 보유한 재산은 조사 대상 48개국 가운데 두 번째로 낮았다는 것. 또한 10억달러 이상 자산가의 수는 일본 전체보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더 많다고 전했다.
다만 현재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경기 부양책 ‘아베노믹스’로 인해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이 확산되고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선 후 주가가 두 배로 뛰긴 했지만 물가 상승과 소비세 인상의 영향을 제외한 실질 임금은 감소, 소득 격차가 다시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UC버클리의 사에즈 교수는 “아베노믹스가 경제 성장에 어느 정도 기여는 하고 있으나 상위 소득 계층에게만 좋은 정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