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인터넷 전문은행] “금융산업 경쟁력 확보” vs “대기업 私금고화” 찬반 팽팽

입력 2015-02-0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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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금융산업 경쟁력 80위 수준 불과 ‘금융계의 삼성’ 육성 필요성… 신분확인 어려워 악용 가능성도

정부가 6월까지 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이하 인터넷은행) 모델 수립에 나섰다. 정부는 은행법과 금융실명제법 개정을 적극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사기업이나 IT기업이 은행업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인터넷은행 설립을 강력히 밀어붙이는 건 두 가지 요소 때문이다. 시장에 신규 사업자를 늘려 경쟁 촉진을 유도해 고객 혜택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또 덩치를 키워서 해외 진출도 노려보겠다는 속내도 있다.

하지만 금산분리(금융, 산업자본 간 분리)와 금융실명제 등 민감한 이슈와 맞물려 있어 인터넷전문이 아닌, 인터넷전용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고 시장부양 효과도 미미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변화된 환경… 이대로면 뒤처진다 = 세계적으로 은행 환경이 변하고 있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1995년 미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인터넷은행은 미국에서 20여개, 일본에서도 6개가 성업 중이다. 또 구글과 페이스북도 ‘모바일 혁명’과 ICT와 금융이 융합하는 ‘핀테크(fintech)’시장에 올라타기 위해 유럽에서 인터넷은행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새로운 시장 창출은 산업계와 은행업계가 각자의 기술과 경험을 융합해야만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금산분리의 원칙에 따라 산업계의 금융산업 진출에 진입장벽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은 한국 금융산업을 144개국 가운데 80위로 평가했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에서 ‘금융의 삼성전자’가 절실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그리고 이 같이 혁신적인 발전은 ‘주인있는 기업’이 강력하게 밀고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18개 시중은행, 지방은행, 금융지주회사 중에서 외국계 3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부, 예금보험공사, 국민연금이 대주주다. 이들은 늘 낙하산 인사 논란에 시달리고, 높은 규제로 운신의 폭이 좁다.

인터넷 은행이 활성화되면 실질적인 혜택도 많아진다. 일반 은행보다 점포 운영비와 인건비 부담이 적어 1% 포인트 이상의 금리 인하 혜택이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또 바쁜 시간을 쪼개 은행 점포를 방문할 필요도 없고 365일 본인이 편한 시간에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객 편의도 향상될 수 있다.

◇은행, 기업의 ‘사금고’될 수도 = 인터넷 은행의 핵심은 금산분리 규제 완화다. 그러나 기업의 사금고로 악용될 수 있는 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또 금산분리가 적용되지 않는 저축은행에서 수없이 나타난 동일인 대출한도 위반과 출자자 대출한도 위반도 그 빈도가 높아질 수 있어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대포통장 확산 등 각종 범죄에 대한 우려도 있다. 온라인 거래만으로 계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면 신분 확인이 더 어려워지고 이를 악용한 전자금융 사기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대다수 국민의 신용정보 대부분이 이미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위험성은 더욱 심각하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분명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수요가 낮을 경우 자칫 온라인 자동차 보험사와 비슷한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온라인 다이렉트보험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교보생명이나 현대해상 등 대형 보험사들도 온라인 자동차 보험시장 진출을 위해 자회사를 설립했지만 별 재미를 못봤다.

우리나라는 인터넷뱅킹 자체가 워낙 발달돼 있고 은행 지점도 많아 인터넷 은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이 현실화되더라도 기존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온라인 사업부를 두고 인터넷 전문은행이 제공하는 365일, 24시간 서비스를 저금리로 제공한다면 후발 사업자 입장에서는 경쟁 자체가 어려워져 경쟁과 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도 의문시 된다.

◇인터넷 전문? ‘인터넷 전용’에 그칠 수도 = 그렇다고 금산분리 완화 없는 인터넷 은행 설립은 한계가 있다. 전문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현재 은행이 제공하고 있는 인터넷뱅킹의 업무 범위를 사실상 벗어날 수 없게 되어서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아닌 ‘인터넷 전용은행’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금산분리 완화를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은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계좌 개설시 반드시 대면 확인 절차를 요구하는 금융실명제법도 개정이 쉽지 않긴 마찬가지이다.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을 위해 본인 확인 요건을 완화시킬 경우 대형 금융사고로 이어질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인터넷은행 설립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기술적·제도적 방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설립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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