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주체 떠오른 X세대…아버지·노부부 ‘가족코드’ 주효, 경제적 여력 한몫
그동안 4050세대에게 문화생활은 사치였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고, 24시간 자식을 위해 살아야 했던 40대에게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문화 콘텐츠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지금도 40대는 극장보다 사무실이 어울리는 ‘워커홀릭’ 이미지가 다분하다. 한없는 절제와 자기관리 속에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이 여가생활의 전부였던 40대가 문화 소비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11월 27일 개봉한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한국 다양성 영화사를 다시 썼다. 그해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1위 ‘워낭소리’의 기록을 5년 만에 경신했고, 현재 470만명의 누적 관객수로 웬만한 상업영화 못지않은 흥행 스코어를 기록하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은 지난 13일 누적 관객수 1000만명을 돌파하며 새해 첫 1000만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영화 11번째이자 외화까지 합했을 경우 14번째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국제시장’은 산업화를 일군 아버지 세대를 그려내며 근현대사의 민낯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시골마을 아흔여덟 할아버지와 여든아홉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한 관객층도, 6·25전쟁부터 이산가족 상봉까지 공감한 관객층도 40대였다.
김상호 영화평론가는 “문화의 주류가 젊은 세대가 아닌 중장년층 세대를 소재로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소비주체가 2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며 중장년층이 봐도 재밌고, 공감이 가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의 생산이 가속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난해 40대를 비롯한 중장년층은 우리 영화의 또 다른 주류로 떠올랐다. 중장년 세대 코드 영화들이 흥행을 주도할 정도로 문화 콘텐츠의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했다. CGV리서치센터에서 지난해 CGV를 찾은 관객들을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중장년층의 영화 관람 횟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45~50세 관객이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드라마 역시 40대 시청자의 강세가 여전하다.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15일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종영한 ‘피노키오’의 주 시청층은 40대 여성이었다. 지난해 11월 tvN ‘미생’의 잇따른 자체 최고 시청률 달성에도 40대 여성 시청자가 가장 많았다. 닐슨코리아 측은 “드라마의 소비 주체는 40~50대다. 이는 비단 현 상황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아침드라마가 미니시리즈 등 한류스타 출연작을 제치고 시청률 우위에 기록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월드컵, 세월호 참사 등 잇따른 악재 속에서 공연티켓 판매의 증가폭을 가능케 한 것도 40대의 힘이었다. ‘그날들’을 필두로 40대의 공감 코드가 등장했고, 경제적 여력이 2030세대보다 높은 40대가 소비주체로 나섰다. 티켓 평균 가격이 10만원을 호가하는 뮤지컬 ‘디셈버’ ‘위키드’ ‘엘리자벳’ ‘레미제라블’과 같은 대형 뮤지컬 공연장을 찾는 40대 이상의 관객 비율도 증가했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을 관람한 전체 관객수는 800만명 정도로 추산되며 이 중 25%의 비중을 차지하는 건 40대를 포함한 중장년층이다. 인터파크INT 측은 “공연티켓의 효자는 뮤지컬 분야다. 전년 대비 6.7%나 상승했다. 전체 공연티켓 판매량에서 뮤지컬과 콘서트 비중은 88.7%로 매년 90%를 육박한다. 뮤지컬과 콘서트의 경우 고가의 티켓 가격에도 상승세를 보일 수 있었던 점은 문화 소비주체로 부각된 40대의 힘이 가장 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