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규 산업부 차장
대표적 재벌 개혁론자이자 참여정부 시절에 공정거래위원장(12대)을 지낸 강철규 환경정의 이사장이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면전에서 쓴소리를 내뱉었다. 지난해 최악의 내부 비리로 홍역을 치른 롯데홈쇼핑이 지난 10월 출범한 자문기구인 ‘경영투명성위원회’의 네번째 간담회가 열린 날(1월 15일)이었다.
공개 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신 회장이 롯데홈쇼핑의 경영투명성위원회 간담회 장소에 직접 참여한 이유는 뭘까? 그룹에서는 공정거래, 소비자권리, 부패문제 등 각 분야에서 신망이 높은 전문가들이 롯데홈쇼핑의 투명 경영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신 회장이 동의하며, 위원들의 활동을 격려하고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신 회장의 이번 행보는 날개없이 추락하는 롯데의 ‘이미지 개선’에 방점을 찍은 것이라고 분석한다. 간담회에 그룹 실세인 소진세 대외협력단장과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 등을 배석시켜 경영투명성위원회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은연 중에 내비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
롯데홈쇼핑은 유통 계열사가 많은 롯데에서도 ‘갑질의 대명사’로 불렸다. 지난 6월 검찰의 롯데홈쇼핑 수사를 보면 MD에서부터 대표까지 총체적 비리를 통해 어떤 게 진짜 갑질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신헌 전 롯데홈쇼핑 대표이사는 납품업체로부터 방송편의 등 대가로 1억여원을 수수하고 회사 돈 3억여원을 횡령했고, 일부 직원들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전처나 내연녀 동생 계좌까지 동원해 금품을 수수했다. 모두 홈쇼핑 방송에 출연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저지른 일이다. 한 임원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협력업체 신용카드를 사용하다가 들통나기도 했다.
최근엔 롯데마트가 시식행사 비용을 협력업체에 떠넘겨 공정위의 철퇴를 맞았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에 피해를 입히는 등, 이른바 부적절한 갑질 적발 건수에서 최근 수년간 롯데는 단골명사로 등장했다.
롯데그룹은 신격호 회장의 일생의 숙원 사업을 위한 제2롯데월드 때문에도 골치를 앓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저층부 임시개장을 했지만 계속된 건물 균열과 누수, 안전사고 등으로 그룹 이미지는 이미 바닥을 뚫고 지하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신 회장은 결국 제2롯데월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안전관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에도 이인원 부회장 등 그룹 실세를 모두 동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롯데는 안전에 대해 흉내만 내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일례로 제2롯데월드 시공사 롯데건설의 고위 임원이 부회장으로 있는 학회에 안전 용역을 맡긴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일으켰다.
최근에는 롯데가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해임으로 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각종 추측으로 어수선했다. 형과의 싸움이 오래 전부터 계속됐다는 여러 보도에 그룹과 신 회장 본인의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모든 사안이 그룹과 자신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간다. 욕망의 바벨탑을 쌓기 위해 직원들을 다그치기만 하고 속사정을 들여다보지 못한 결과치고는 아주 고약하다. 여기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신 회장의 뒷처리 방식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