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영화 ‘국제시장’의 이면: 필요한 또 하나의 대사(臺詞)

입력 2015-01-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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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영화 ‘국제시장’을 보았다. 피난민이 몰린 흥남부두, 그 아비규환 속에서 어린 주인공은 막내 여동생을 놓쳐버리고, 그래서 가족은 생이별을 한다. 첫 장면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뒤로도 애틋하고 감동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죽기 살기로 일하다 그것도 모자라 독일 광부로, 또 월남으로 가는 주인공. 그 덕에 너도나도 먹고 살게 되고, 마침내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흥남부두에서 놓쳤던 여동생을 찾기까지 한다.

시련을 딛고 일어선 자랑스러운 역사에, 또 그 역사를 담은 영화에 울고 웃고 감격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노인이 된 주인공이 던진 말이 머릿속에 진하게 남는다. “힘든 세상에 태어나, 그 힘든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닌 우리가 겪은 게 다행이라….”

그래, 얼마나 자랑스러운 역사냐.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의 최빈국이 이제 1인당 3만 달러를 바라보는 나라가 되었다. GDP 규모로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풍파를 우리가 겪은 게 다행”이라 말하고 말기에는 가슴 한쪽이 너무 허전하다. 정말 그렇게만 말할 수 있을까? 그 주인공의 자식들이나 그 아래의 세대들은 그 풍파를 겪지 않고 있을까?

언젠가 수업 도중에 여학생 하나가 자리를 떴다. 화장실을 갔으려니 했는데 수업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주, 수업이 끝난 뒤 그 여학생을 불렀다. 한두 마디 나무라자 바로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더니 곧바로 눈물을 쏟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학에 들어올 때는 희망이 넘쳤단다.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로 버티다 보면 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단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고, 이제는 감당하기 힘든 빚까지 지게 되었다고 했다. 희망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사는 것이 겁이 나고, 때로 너무 힘든 나머지 살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그날도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급하게 찾아 나갔단다. 행여 그 자리마저 놓칠까 봐.

엄습하는 자괴감에 무력감, 도대체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었겠나. 그저 보이지 않게 가슴만 쳤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너희들에게 이런 고통을… 우리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정말, 어찌어찌 졸업을 한다고 치자. 그러면 나아질까? 청년실업 9~10%는 그저 허울 좋은 숫자다. 취업을 아예 포기한 경우와 어쩔 수 없이 되지도 않는 자영업으로 몰린 경우 등을 합치면 실제 실업률은 그 몇 배가 된다.

취업의 질도 문제다. 20%가 1년 이하의 계약직이다. 지난해 있었던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공의 자살로 알려진 것이지만, 일류회사 유니폼의 근로자들조차 먹고 살 만큼 받지 못한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그의 선배에게 보낸 문자가 가슴을 찌른다. “형, 죽자고 뛰는데 왜 돈이 없지?”

‘국제시장’의 주인공 세대는 ‘탈출’이라도 할 수 있었다. 즉 기회를 찾아 독일로 베트남으로, 또 중동으로도 나갔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는 탈출할 곳도 없다. 또 희망도 없다.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3포’, 즉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을 넘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5포’로 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또 다른 ‘탈출’이 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그 속에서 젊은이들의 자살률도 늘고 있다. 2001년 이후 10년 동안 소위 ‘에코세대(79~92년생)’의 자살률은 5.1배, ‘포스트 베이비붐 세대(64~78년생)’의 자살률은 2.4배 늘었다.

영화는 영화다. 영화를 탓하는 게 아니다. 우리 역사를 보는 눈도 그렇다. 자랑스러운 부분도 있고 안타까운 부분도 있다. 그중 어느 한 부분을, 또 어떤 특정한 시각에서 이해한다고 하여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알아야 한다. “그 풍파를 우리가 겪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 즉 여기까지 왔다는 자부심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풍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 그런 점에서 ‘국제시장’의 주인공 세대를 비롯한 윗세대들이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해 해야 할 또 하나의 대사(臺詞)가 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느라 했지만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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