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원스 인 더블린

입력 2015-01-1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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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유학생

하루에 열 두시간쯤은 가뿐하게 앉아서 일만해야 하는, 떠밀려서 살아야 하는 삶이 싫어서 홀연히 사표를 내고 세상에서 가장 천천히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도시인 더블린에서 지낸 지 오늘로서 정확히 두달이 됐다.

처음에는 “그래, 이렇게 사는 게 인생이려니” 싶었다. 속도전에 익숙해진 내가 문제지, 원래 이렇게 느릿느릿 음악과 맥주와 여유가 있는 나라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수년 전 여행했던 아일랜드 배경의 영화 원스의 주제곡처럼 ‘falling slowly’, 느릿느릿 이 도시에 빠지고 있었다.

그러나 요새는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일 뿐 내가 꿈꾸는 적당히 바쁘고, 적당히 여유있으며, 마냥 행복하고 만족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나라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유토피아를 꿈꿨구나 하고 생각할때가 많다.

2010년 아일랜드의 구제금융 이후 현재까지 은행, 건축, 부동산 등의 분야에서 엄청난 실업자가 발생했다. 매우 더디게 회복되고 있어서 더블린은 대낮부터 밤까지 슈퍼나 은행 근처에 구걸하는 젊은 거지들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식당에서 화장실 갈 때 휴대폰을 자리에 두고 갔다간 눈 깜짝할 사이에 도둑 맞기 십상이다. 의료서비스 역시 문제가 많아서 생명이 위급한 응급상황이 아니면 의사 없이 수시간을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원래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했던가. 뭐든지 빨라야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도시가 서울인 것만큼 우리가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세계적인 의료, IT, 교통 인프라 서비스가 분명히 있다. 다만 대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스스로 너무 지쳐서 자꾸 다른 곳에 지상낙원이 있을 거라고 눈을 흘끔거릴 뿐이다.

슬프지만 진실을 알았기에 현재 여기서 약속된 시간을 사는 만큼 좋은 것만 보고 충분히 체험하고 돌아가리라 다짐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 역시 한국이 좋아’라면서 떠나기 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치열한 삼십대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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