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아하!] 3만 달러의 불편한 진실

입력 2015-01-0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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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특이한 새해다. 희망이 넘쳐야 할 신년에 오히려 비관론이 휩쓸고 있다. 정부는 리더십과 비전이 남았을 법한 집권 3년차이고 주요 경제 성과도 멀쩡한데 그렇다.

당장, 한참 뛰어야 할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는 장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3% 중반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저성장 기류를 고려하면 괜찮은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우리 성장률이 3.8%를 기록하며 멕시코(3.9%)에 이어 34개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에는 3.5%로, 회원국 중 최고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선진국의 주요 척도인 1인당 국민소득도 3만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807달러로 늘어나 세계 주요국 중 24위로 한 단계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3만88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예상보다 빨리 ‘중진국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것이란 뜻이다. 올해 3만 달러를 달성하면 2만 달러 졸업에 12년 걸린 싱가포르나 네덜란드보다 3년가량 빠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에 전체 인구 수 5000만명 이상인 나라는 미국 등 6개국뿐이다. 아프리카 약소국에도 못 미치던 한국이 광복 70년 만에 ‘30-50클럽’의 7번째 국가가 될 것이란 뜻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꽁꽁 얼어붙은 체감경기에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새해부터 러시아가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졌고 나홀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은 금리인상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젖줄인 중국의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도 소비심리는 살아나지 않으며 디플레이션 공포감만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와 가계대출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주택시장은 활기를 찾지 못하고, 전셋값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일자리 불안은 전 세대를 강타하고 있다.

3만 달러 진입도 내실보다 과대포장된 상태다. 도깨비 방망이 같은 환율의 마술이 작용한 데다 실질소득인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은 선진국은커녕 말레이시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원ㆍ달러 환율을 1100원으로 잡으면 1인당 한 해 소득이 3300만원으로 4인 가구면 1억3000만원 이상의 평균 소득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금액에는 기업소득이 포함돼 있어 실제 개인소득이 낮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소득 양극화 현상까지 심화되면서 더욱 그렇다.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1997년, 98년 이전에는 각각 0.26, 0.27이었는데 지금은 0.35를 넘어섰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에 따르면 소득 분배 불평등 수준도 OECD 회원국 중 칠레, 멕시코, 터키, 미국에 이어 다섯 번째로 심각하다.

세계가 저성장과 소득 양극화에 따른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 보수적 입장을 견지해 온 IMF, OECD 등도 진보적 시민단체를 방불할 정도의 깜짝 보고서까지 내고 있다. 연초에 열린 전미경제학회의 화두도 회복세를 탄 미국 경제나 저성장 늪에 빠진 유로존이 아니라 불평등이었다. 자본주의의 불평등 문제를 지적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와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불평등을 놓고 불꽃 논쟁을 벌였다. 이에 앞서 OECD는 지난해 12월 “소득불평등이 오히려 경제성장을 방해한다”며 조세정책을 통해 소득 불평등 현상을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 연준의 재닛 옐런 의장도 지난해 결과의 불평등이 기회의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불평등 확대가 영속화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리는 따로 놀고 있다. 불평등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정부는 가계소득 3대 패키지법과 비정규직 대책 등을 통해 풀어나갈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진정성과 적극성이 아쉽다. 오히려 올해 최우선 국정과제로 꼽은 노동개혁이 불평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게다가 사회적 논의마저 진영논리에 함몰돼 건설적 공론의 장이 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정부 정책 등에서 비롯된) 이런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며, 정책을 바꾸면 보다 효율적이고 더욱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도 해법 찾기에 나서야겠다. 불평등 해소가 밥 먹여 준다는 그런 자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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