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즉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에서도 드러났지만, 청와대 측과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측은 서로 말이 엇갈린다. 조 전 비서관 측이 이른바 ‘십상시 회동’을 들고 나오니까 청와대는 이제 ‘7인회’로 맞받는다. 이 과정에서 청렴하고 촉망받던 경찰이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까지 발생했지만, 어쨌든 양측 모두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또 양측 모두 “그런 모임은 없다”라는 상반된 입장도 개진하고 있다. 그렇다고 검찰 조사를 기다리면 이런 궁금증이 모두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들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청와대는 ‘권력 투쟁의 장소’로 국민들의 뇌리 속에 각인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사실이 분명한 만큼, 청와대는 보다 적극적으로 의혹 해명에 나서야 한다. 청와대가 권력 투쟁의 무대로 국민 눈에 비쳐지면, 청와대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청와대가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 결국은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듯 입장이 엉망인 곳이 또 있으니 문제다. 바로 대한항공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 문제인데, 이 문제도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을 수 있었다. 조기에 진화했더라면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한항공 측이 조기 진화는커녕, 초기에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응했다는 점이다. 아마 ‘설마 승객들이 증언을 할까’ 안이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선 사방에서 증언이 터져 나와 대한항공 측의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반면, 피해 사무장 측의 증언은 신뢰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항공 측의 성명을 보면 역설적으로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21세기에 맞지 않는 족벌식 폐쇄 경영, 기업을 왕국과 같은 사조직으로 만들어버린 비정상 경영이 바로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리턴’ 사태와 같은 일을 발생케 했다는 얘기다.
조 전 부사장의 문제는 간단히 넘어가서는 안 되는 문제다. 이 문제는 항공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재벌 기업의 소유구조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문제여서, 이 문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대한항공의 기업 이미지뿐 아니라, 재벌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도 상당히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승객들과 문제의 사무장 증언이 쏟아져 나온 이후, 대한항공 측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만일 입장을 내놓는다면 이번엔 좀 솔직하고 진심이 담긴 입장을 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도 명색이 국적기인데, 이런 불명예를 안고 얼마나 버틸지 정말 안쓰럽게 보인다.
분명한 점은 대한항공 소유 일가의 이런 태도는 하루 이틀에 생긴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의 해결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왕 그렇게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 이 기회에 국적기의 소유 구조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본다. 국적기가 지금처럼 오너 일가에 의해 지배되면, 이번 일과 같이 국가 자체를 창피하게 만드는 일들이 종종 발생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지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두 사건은 당사자 간에 말이 어긋난다는 공통점 이외에도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기관, 그러니까 청와대와 대한항공 모두 폐쇄적이고 내부에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소통의 과정이 존재했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습효과가 떨어지는 존재는 사실상 생존하기 힘든 세상이다. 한쪽은 국가를, 나머지 다른 한쪽은 국적기를 책임지고 있으니, 생존이 문제라는 소리를 결코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는 학습효과가 좀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