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 논설실장
1970년대 유신시대와 압축성장기를 학생으로 보낸 50대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 여사의 서거에 가슴 아파한 감성을 공유한다. 그들의 추억의 앨범에는 박 대통령이 5년 뒤 측근에 시해되기까지 모친을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영애 근혜양’의 모습도 오롯이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베이비 부머인 50대는 그 많은 숫자를 앞세워 박근혜 대통령의 수호천사 역할을 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50대 유권자의 10명 중 9명이 투표에 나섰다. 62.5%의 지지율은 51.6%대 48.0%란 박빙의 승부를 가른 일등공신이었다.
그런 50대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일제히 하락한 가운데 서울, 50대, 남성, 학생, 중도성향에서 낙폭이 컸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의 볼썽사나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에 이상신호가 들어온 것이다. 50대는 세월호 참사 직후에도 크게 출렁댔지만, 복원력을 잃지 않았다. 정윤회 파동에선 어떨까! 글쎄다. 비판이 자조와 조롱으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렇다.
당장 박 대통령의 대응이 이상하다. 대통령이 해명도, 반박도 없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대응 방식이 이상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조차 납득하기 어렵다. 제대로 보좌를 받고 있는지 의구심까지 든다. 당장 박 대통령은 7일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을 ‘근거 없는 일’ ‘찌라시에나 나올 얘기’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관련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수사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뜩이나 불신을 받고 있는 검찰 수사를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 셈이다. 게다가 정윤회 관련 문서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에서 작성한 게 아닌가. 신뢰성에 의문이 있다고 해서 공공기록물을 ‘찌라시’로 비하하는 것은 사슴을 말이라고 강권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대통령의 타협불가의 비장한 결기다. 박 대통령은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저에게 겁나는 일이 뭐가 있겠나? 솔직히 말해서 아무것도 겁날 일도 없다”고 ‘결연한 기상’을 표현했다. 이어 “우리 모두 언젠가는 세상을 떠야 되고 이 일도 마쳐야 되는데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일을 안 하고 뭘 하겠나?” “흔들릴 이유가 없는 사람이고 어떤 것도 겁을 낼 필요가 없는 사람이며 오로지 그 하나로 지금까지도 살아왔고 앞으로 마치는 날까지 그 일로 살아갈 것”이라며 ‘순교자’같은 자세까지 보였다.
박 대통령의 결기는 지금까지 통했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4년 천막당사를 치고 난파선 신세였던 당을 구했고, 세종시를 무산시키려던 이명박 정권에 맞서 싸워 신뢰의 정치란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무대부터 다르다. 그때의 결기는 박 대통령의 장기인 선거에서 위력이 발휘된 반면 지금은 대통령의 최약지점으로 꼽히는 인사 분야에서 작동돼야 한다.
게다가 결기는 자칫 오기와 독선에 빠지기 쉽다. 특히 박 대통령은 ‘배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능력보다 충성도를 위주로 사람을 기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때문에 자질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인사를 끝까지 안고 가거나 능력 있는 인물을 포용하지 못하는 치명적 실책을 범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소통방식과 청와대 인사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새누리당 초ㆍ재선 의원은 인사추천 실명제 도입, 대통령에 대한 대면보고 일상화, 기자회견 정례화 등을 제안했다. 반면 당 지도부는 직언은커녕 민심조차 전하지 못하고 있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중국의 대표적 명재상 위징(魏徵)의 간언이 떠오른다. 군주의 길을 묻는 당 태종에게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며 간신 우세기(虞世基)를 총애한 수 양제를 예로 들면서 “두루 폭넓게 들으면 밝아지고, 편벽하게 들으면 어두워진다”고 간 큰 조언을 했다. 박 대통령에게도 딱 필요한 직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