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야기 중에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이야기가 나왔다. “대통령이 직접 특정 국ㆍ과장을 ‘나쁜 사람들’이라 하며 교체하라 했느냐”는 질문에 “대충 정황이 그렇다”고 대답한 부분이다.
이구동성으로 비난을 했다. 어떻게 모시던 ‘보스’를 욕보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차관을 지낸 뒤 당시 청와대의 인사 압력을 공개한 전력까지 더해져 비난의 강도가 더 높아졌다. 정치적 지지성향을 넘어 만장일치, ‘나쁜 사람’으로 합의를 보는 분위기였다.
순간, 질문을 하나 했다. “그러면 기자가 확인을 요청해 왔을 때 어떻게 대답했어야 하지? 부정해야 하나? 아니면 노코멘트해야 하나?” 부정은 곧 거짓말, 당연히 공직윤리에 어긋난다. 그러면 노코멘트를 하거나 피신해야 하는데, 이게 곧 시인하는 것 아닌가?
이번에는 반응이 엇갈렸다. 거짓말을 하는 편이 옳다는 주장에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충’과 ‘의리’를 존중하는 유교문화와 비정의성(impersonality)이 강조되는 오늘의 공직윤리가 부딪치는 것이다. 공직윤리 강의나 정의론 강의에 올려 볼 만한 주제다.
개인적 소견으로 유 전 장관의 문제는 진실을 말한 부분이 아니다.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부분도 아니다. 가장 크게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청와대의 인사 압력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있어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못난 사람’이다. 오늘의 공직윤리에 있어서도, 또 유교적 가치에 있어서도 그렇다.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 참여정부 시절 비서동 건물 복도에서 장관급 기관장과 마주쳤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이 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하는 말, “일에 맞지 않는 사람을 부기관장으로 내정하면 어떡하나. 누가 이런 짓을 하는지 찾아내겠다. 대통령이 했다면 대통령으로부터도 설명을 들어야겠다. 절대로 이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
어떻게 되었냐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부기관장 자리에 앉혔다. 청와대로 찾아와 어떻게 인사를 이 따위로 하느냐 고함을 지르고,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냥 있지 않겠다는 사람을 누가 이기겠는가.
명색이 장관이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든 실세 비서관이든 국ㆍ과장 인사에까지 개입을 하면 “이래 가지고 장관 노릇 하겠느냐”고 항의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정도도 안 되는 장관을 어느 공무원이 장관이라 따르겠는가. 모두 우습게 보고 툭하면 청와대 쪽을 가리키며 장관 위에 올라탈 것이다. 제대로 된 인사권자라면 목을 쳐도 열 번을 칠 장관이다.
공직윤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관련된 건을 또 하나 올려보자. ‘정윤회 문건’의 중심에 서 있는 조응천 전 민정비서관의 태도다. 청와대가 해당 문건을 ‘찌라시 수준’이라고 하자 그는 “60%는 사실”이라 반박했다. 아니 “60%는 사실”이라니? 60% 사실이면 그게 곧 ‘찌라시’ 아닌가?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60%”라는 것은 겸양과 겸손의 표현일 뿐이라 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안 된다. 공무원이 정부와 문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정도로 겸양에 겸손을 떨 이유가 없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국가가 중요한 자산이고, 공무원은 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단 1%라도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폐기나 수정을 지시했어야 하고, 사실이라 믿었다면 그랬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장관도 한심하고 비서관도 한심하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나도록 만들고 있는 정부와 청와대는 더 한심하다. 정치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것이 레임덕의 조짐이냐 아니냐만 이야기하고 있다. 또 관련자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내게 유리하면 로맨스, 내게 불리하면 불륜이라는 입장이다. 그야말로 정치인으로서의 윤리가 없는 것이다.
기왕에 벌어진 판이다. 밥자리, 술자리의 실세 논란 이야기판에 해당 공직자들이 어떠해야 했는지도 올려놓고 제대로 한 번 씹어 봤으면 한다. 그 나름 맛이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