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이자제약이 자사 제품의 건강보험 등재를 위해 약제급여평가위원에게 불법 로비를 시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 같은 정황을 모르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심평원은 지난 4일 진행된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뒤늦게 화이자의 잴코리 약을 상정 안건에서 제외시켰지만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5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인 건강보험가입자포럼에 따르면 화이자제약은 지난 1일 제13차 약제급여평가위원회(급평위) 참여 위원에 폐암 치료제 ‘잴코리’에 대한 불법 로비 의혹 문자를 보냈다.
화이자제약 직원 이름으로 보내진 이 문자에는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폐사의 잴코리가 상정될 예정이어서 관련하여 찾아뵙고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바쁘시겠지만 귀한 시간 내주시면 잠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설치된 급평위는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 여부를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 효과성을 근거로 판단하는 기구다. 13차 급평위는 이날 열릴 예정으로 화이자의 잴코리도 상정된 상태였다. 잴코리는 2011년 국내 시판 허가를 받은 후 앞서 두 차례에 걸쳐 급여 신청을 했지만 계속 건강보험 대상에서 탈락했다.
위원회는 50여명으로 꾸려진 인력풀 가운데 회당 20명 내외로 구성돼 회의를 진행한다. 회의 2주일 전에야 참석 의원이 결정되고 회의 안건은 1주일 전에 전달되며 철저히 대외비로 열린다.
건강보험가입자포럼은 화이자제약이 해당 회차 참석위원을 정확히 알고 로비를 시도했다면 누군가가 명단을 유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강보험가입자포럼은 “급여 여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 유지와 국민 건강에 중요한 부분”이라며 “심평원은 논란이 된 해당 약제를 급평위 심사에서 제외하고, 화이자의 로비를 위한 명단 유출을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와 업체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에서 더 심각한 것은 로비 시도 의혹에 대해 심평원 측이 급평위가 진행되는 1일까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언론 보도를 통해 로비 시도 정황을 알았다”며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부의예정 안건인 화이자의 잴코리캡슐과 관련해 위원명단 외부 유출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 중에 있으며,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 금번 급평위에 해당 안건 상정을 보류했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떤 경로를 통해 위원회 명단이 유출됐는지 확실하게 알아내야 한다. 만약 내부에서 문건이 유출 된 것이라면 심평원도 책임을 명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