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에 조언한다] ‘돈맥경화’ 유동성의 함정에 빠진 한국경제

입력 2014-12-01 09:15수정 2014-12-0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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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유통 속도 0.74 ‘최악’… 대기업 유보율 1093% 넘쳐나는 현금

‘중앙은행이 돈줄을 풀어도 돈이 중앙은행과 은행 사이에서만 왔다갔다 한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상황이 지속하면서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가 본격적으로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한 상황이지만 징후는 곳곳에서 관찰된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를 아무리 낮춰도 기업투자와 가계소비 등의 실물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침체기일 때 금리를 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처방이지만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진 상황에서는 잘못된 처방이 된다. 경제주체들이 미래의 경기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목표로 삼았던 소비와 투자의 진작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구조조정이 지연되거나 자산거품이 생기는 등의 부정적 효과만 두드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유동성 함정 사례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미국경제를 들 수 있다. 당시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양적완화 정책을 시작했지만 경기는 상당기간 동안 정부의 기대를 밑돌았고 물가도 정체돼 있었다. 장기간 저금리 정책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았던 1990년대 초반 일본의 사례도 있다.

한국 경제도 요즘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이 잘 먹혀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화폐유통속도는 0.74다. 10년 전은 물론이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도 낮아진 수준이다. 화폐유통속도는 한 단위의 돈이 일정 기간에 얼마나 회전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화폐유통속도가 떨어졌다는 것은 한은이 통화량을 늘렸음에도 GDP 증가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기업의 넘쳐나는 유동성도 징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 기업의 6월 말 기준 유보율은 1092.9%에 달한다.

시중에 풀린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않고 금융권에서만 돌고 있다는 얘기다. 현대경제연구원 임희정 연구위원은 “최근 상황이 불안하니까 금융과 실물 간의 관계가 약해져 금리전달 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재정정책과 금리정책이 함께 가는 모양새를 취하기 때문에 정책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당국은 판단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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