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1 = ?
영화 '버스, 정류장'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사회 부적응자들의 만남이다. '버스, 정류장'에는 어른을 싫어하는 어른 재섭(김태우)와 상처를 원조교제로 풀어가는 여고생 소희(김민정)이 등장한다. 운전면허로 증명되는 것이 어른의 삶이라면 김태우는 도중 실격이요, 임신과 출산으로 대변되는 것이 여성의 삶이라면 김민정은 낙제다. 두 사람은 이 같은 상실감을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치유되거나 혹은 더 깊이 우울해진다.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이 영화의 잣대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버스, 정류장'에서 보여지는 김태우와 김민정의 이중성을 들 수 있다. 영화 속 김태우의 대학 동기나 회사 동료들, 김민정의 아버지 등은 이른바 혐오스러운 '속물'로 통용되지만, 동시에 사회적 동경의 표상으로 존재한다. 협동과 타협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김태우는 잘 나가는 동기에 대한 열등감과 학원 전담 선생에 대한 욕심, 청바지를 입고 싶은 찌질한 욕구가 함께 잠재돼 있다. 뇌물 받는 아버지를 증오하는 김민정 역시 아버지뻘의 남자가 찔러주는 돈을 원조교제의 대가로 받아든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태우가 차를 사고 운전면허증을 따려고 노력하는 것과 김민정이 원조교제를 통해 번 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모호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 정류장' 감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거짓말 게임을 통해 드러나듯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과 거짓, 혹은 선과 악 같은 흑백의 잣대가 아니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끼리 나누면 맛이 두 배가 되고, 매도 먼저 맞은 사람끼리 나누면 아픔이 반이 된다. 무슨 말이냐 묻지 마라. 농담이다. 아무튼 -1 더하기 -1이 언제나 -2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을 못 알아듣겠다면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적어도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에 속하는 성숙한 어른이라는 뜻이니까.
◆ 영화 '버스, 정류장'과 루시드폴의 음악
루시드폴의 음악은 영화 '버스, 정류장'과 많이 닮아있다. '버스, 정류장' OST에 삽입된 12곡의 음악들은 불처럼 뜨겁거나 바다처럼 넓지는 않지만 진득한 맛이 있다. 멋 내지 않은 담백한 어쿠스틱은 극 중 김태우의 삶처럼 충분히 권태롭고 멜랑꼴리하다. 가벼운 보사노바의 리듬과 맑은 오보에의 멜로디는 사랑에서만큼은 순수한 김태우와 김민정을 닮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루시드 폴은 어깨에 힘을 쫙 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음악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나온 편안한 음악들은 초콜릿 거품처럼 영화에 달달하게 녹아든다. '버스, 정류장' OST에서 가장 모험적인 시도를 뽑으라면 "잊으라는 말 대신 사랑한다 해줘요"라고 속삭이는 뽀마드 잔뜩 바른 감성 트로트 '약속된 사랑'뿐이다. 자꾸 들으면 "아~아~아~"하는 여성의 코러스가 귀엽다.
특히 가장 사랑받고 사랑스러운 음악은 여자 주인공인 소희의 테마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와 남자 주인공인 재섭의 테마 '머물다'다. 가사가 무거운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는 그룹 스웨터의 보컬 이아립의 목소리로 어둡지 않게 읽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고등학생 시절 좋아했던 '머물다'는 지금도 가사를 곰곰이 곱씹어보면 그때 그 감성이 그대로 떠오른다. "혼자 끓인 라면처럼 혼자 마시던 쓴 소주처럼 이젠 내 입가에 머무네." 이런 아련하고 구질구질한 가사들을 그때는 어떻게 이해해댔는지 모르겠다. 그에 비하면 '아~아~아~' 지금 나는 어찌나 이성적인 삶을 살아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