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한데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주인공 ‘수험생 엄마’의 노고에도 높은 점수를 드리련다. 굳게 닫힌 고사장 교문 앞에서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두 눈을 꼭 감고 기도하던 엄마의 옆 얼굴, ‘내 자식 철썩 붙어주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엿가락을 정성껏 학교 담장에 붙이던 엄마의 주름진 손등은 오래도록 우리네 대학입시의 상징 아니었는지.
어쩌면 엄마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는 자녀의 4대 성공요건(조부모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그리고 둘째의 희생) 중 ‘엄마의 정보력’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엄마의 정성과 염원이 진화(?)한 결과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각 대학 입시 설명회장은 수험생 대신 학부모들이 점령한 지 오래되었으니 논외로 하되, 다만 엄마의 정보력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한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으리란 생각이다.
예전 글로벌 기업 인사담당 임원이 대학교수들 앞에서 특강을 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특강 주제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었고, 대학교수 모두 사회가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꿰뚫어보고 이에 부응하는 인재 양성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취지의 강연이었다. 강연 중 구직(求職) 청년들의 행태를 바둑 18급에 비유한 내용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용인즉 요즘 대학생들은 바둑 18급들끼리 모여 “어떻게 하면 1단 딸 수 있지?” 고민하는 모양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1단이 되고 싶으면 1단을 만나 정확한 정보를 얻고 부단히 실전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고만고만한 수준의 아마추어들이 모여 불필요한 정보를 교환하는 품새가 그렇다는 것이다.
비단 대학생들뿐이랴, 자녀의 대학입시를 위해 올인하는 수험생 엄마들 행태도 바둑 18급에 비유되는 청년 구직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로라하는 수험생 엄마의 정보력이란 것이, 학원가 유명 강사나 족집게 과외선생 이름을 꿰고 그들의 몸값을 기억하는 것, 더불어 내신 성적, 학생부 기록, 수능 점수로 어느 대학 무슨 과에 갈 수 있는지 눈치작전을 펼쳐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 딸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은 진정 무엇인지? 그 꿈을 실현하려면 어떤 전공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왕성한 사회활동을 할 즈음 한국사회의 변화를 선도할 전공 영역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우리 아들 딸은 이토록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쌓여있건만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저 눈앞의 경쟁에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슬픈 자화상 아니겠는지.
더 더욱 주위를 돌아보면 소신있게 자녀를 교육하는 건강한 엄마들의 신선한 이야기들도 차고 넘치는데, 왜 굳이 불건강하고 자극적인 괴담 수준의 이야기들만 우리 주위를 떠돌며 엄마들 마음을 어지럽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자라나는 아들 딸에게 골목의 재미를 선사하고 싶어 편리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굳이 골목길이 있는 동네로 이사한 엄마,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다양한 경험이라 굳게 믿고 학원비 대신 방학이면 자녀들과 국내외로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부모,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인문학 공부에 몰두하며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엄마들. 이런저런 이야길 듣노라면 입가에 미소가 돌고 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공포 마케팅의 승리라 해도 좋을 사교육 괴담은 이제 엄마들 스스로 사양했으면 한다. ‘진짜’ 엄마의 정보력은 자녀들 마음을 읽고 헤아릴 수 있는 혜안, 언제 자녀들 등을 두들겨주어야 하는지 느낄 수 있는 민감함, 그리고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때까지 자녀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인내심이란 사실, 기억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