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생각해본 일주일…‘일회용품 제로’ 가능성 체험
◇‘나쁜 놈들’ 골라내기 = 첫날. 우선 어디까지를 일회용품으로 봐야 할지 판단이 필요했다. 생각만큼 간단치 않았다. 종이컵이나 나무젓가락처럼 전형적인 일회용품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X나미 볼펜’처럼 애매한 물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넓은 의미에서는 잉크를 소모한 뒤 버려지는 볼펜도 일회용이기 때문이다. 면봉처럼 대체품이 없는 물건도 애매했다. 일회용 라이터를 쓰지 않으려고 고가의 지포라이터를 구매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사용기간이 비교적 긴 소모성 공산품이나 마땅한 대체물품이 없는 품목은 불가피한 것으로 분류하는 타협을 했다.
◇‘음료’라는 강적 = 일회용품과의 별거를 시작한 뒤 가장 먼저 봉착한 난관은 ‘음료’였다. 물이나 음료수처럼 섭취하게 되는 액체는 대부분 종이컵, 캔, 플라스틱 등 일회용 용기에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텀블러와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동이 필요한 경우 반드시 물을 채워서 이동했고 처음으로 커피전문점에서도 텀블러에 커피를 받아서 마셨다. 주머니와 가방이 묵직해지는 것은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텀블러를 휴대했음에도 평소 즐겨 마시던 음료수를 마실 수 없는 불편이 뒤따랐다. 캔이든 페트병이든 개봉 후 텀블러에 옮겨 담는 순간 일회용품을 사용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었다. 당분간 콜라와 이온음료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컵라면 ‘지·못·미’ = 첫 번째 난관이 ‘목마름’이었다면 두 번째 난관은 ‘배고픔’이었다. 대부분 자취생들이 그렇듯 나도 집에서 조리하기보다는 컵라면과 즉석식품을 이용했다. 늦은 밤 허기가 찾아왔지만 포장비닐과 스티로폼 용기, 수프포장지 등의 일회용품이 들어 있는 컵라면을 개봉할 수 없었다. 찬장에 쌓여 있는 인스턴트 음식은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야식이 배달될 때도 일회용 용기에 담겨 오는 위험이 뒤따랐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불편이라기보다는 부적절한 오랜 습관이 가져다준 불편이었다. 일단 야식을 포기해야만 했다.
◇의외의 강적 ‘마트’ = 늦은 밤의 허기로 집에 무언가 인스턴트가 아닌 먹을 것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음날 나는 과일과 채소, 고기 등을 사고자 마트를 찾았다. 공산품이 아니라 식재료를 사고자 혼자 마트에 간 것은 처음이었다. 가공 음료수를 마시지 않고, 컵라면을 먹지 않고, 건강 식재료를 택하게 된 것은 예상치 못한 순기능이다.
마트는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장바구니가 없어 대신 가방을 메고 마트를 찾았지만 이곳에서도 일회용품을 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진열된 고기는 스티로폼에 담겨 있었고 과일이나 채소를 사려면 먼저 일회용 봉투에 담아서 무게를 달아야 했다. 나는 정육 코너에서 스티로폼 용기에 담지 않은 고기를 주문했다. 고기를 봉투에 담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감수했다. 대신 채소와 과일은 비닐봉지에 담지 않고 무게를 잰 뒤 가격스티커를 내 손등에 붙여 계산했다.
◇‘가능성’을 확인한 일주일 =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7일간의 일회용품 없는 생활은 오랜 기간 뿌리깊게 박힌 습관 탓에 분명히 불편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부분적인 실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임신을 하면 임신부를 자주 보게 되고 군복을 입으면 군인들과 자주 마주친다고 한다. 주변 환경 가운데 인식범위 밖에 있던 것들이 관심사로 바뀌면서 생기는 변화다. 일회용품과 멀어진 기간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텀블러 이용자들을 발견하게 된 것도 새삼 새로웠다. 환경을 위한 개인적 노력이 사회적 단위로 확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된 부분이다.